[차현진의 박람궁리] 달러화 패권 지킨다며 제 발등 찍는 미국
입력 2026 05 22 00:42
수정 2026 05 22 00:42
경제력 쇠퇴, 군사력 퇴조,
도덕적 설득력 상실 등이
달러화 패권 종말 경고음인데
이미 미국 안에서 울리고 있다
세금과 죽음은 언젠가는 분명히 닥친다. 다만 그때를 모를 뿐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만일 그가 요즘에 살았다면, 세금과 죽음에 기축통화의 쇠락을 추가했을 것이다. 프랭클린의 시대에는 영국 파운드화가 세계경제를 움직였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미 달러화에 그 지위를 넘겼고, 지금은 달러화도 빛을 잃고 있다.성급한 사람들은 달러화의 종말이 이미 시작됐다고 말한다. 1974년 체결된 ‘페트로 달러’ 협정이 2024년 만료된 것을 이유로 삼는다. 미국이 안보를 보장하는 대신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수출 대금을 미 달러화로만 받겠다는 비밀 약속이다. 최근에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행세를 달러화가 아닌 위안화로 받는다.
하지만 소위 ‘페트로 달러’ 협정은 헛소문에 가깝다. 진실은 1973년 중동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전쟁하는 동안 사우디아라비아는 가격이 폭등한 석유를 미국에 수출해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그 돈을 미국 국채에 쟁여 두자니 곤란한 문제가 생긴다. 미국 정부로 흘러간 돈은 결국 아랍 국가들과 전쟁 중인 이스라엘을 돕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이적 행위다.
그래서 비밀이 필요했다. 미국 정부가 국채를 발행할 때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몰래 따로 발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소위 ‘페트로 달러’ 협정의 실체인데, 그것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자금 운용을 위한 배려였다. 석유 수출 대금을 달러화로만 받는다는 따위의 언급은 없었다. 그러니 달러화 패권과는 무관하다.
물론 달러화 패권도 언젠가는 끝난다. 세 가지 조건이 맞물려서 퍼펙트 스톰을 만들 때다. 첫째는 미국 경제력의 쇠퇴다. 유엔과는 달리 IMF에서는 오직 미국만 비토권이 있다. 그래서 IMF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미국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 1971년 미국이 달러화와 금의 교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했을 때 다른 나라들이 한마디도 못 꺼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IMF에서 비토권을 가지려면 쿼터 비중이 15% 이상이어야 한다. IMF 설립 당시 미국의 쿼터는 32%였지만, 지금은 16.5%에 불과하다. 그동안 세계경제가 미국보다 빨리 성장한 결과다. 만일 중국 등의 성장 속도가 미국을 앞서면, 미국의 쿼터는 15% 아래로 낮아지고 달러화의 독보적 지위도 사라진다.
둘째 군사력 퇴조의 확인이다. 그것은 전쟁이 아니라 작은 사건으로도 촉발될 수 있다. 영국의 경우 1931년 9월 15일 발생한 항명 파동이 결정적 계기였다. 월급이 25%나 줄어든 수병들이 승선과 출항을 거부했다. 영국 정부는 넬슨 제독 이래 이어져 왔던 ‘세계 최강 해군’의 명성을 유지하는 것이 힘겹다고 느꼈다. 당면한 대공황 해결에만 매진하기로 하고 기축통화국의 자존심도 버리기로 했다. 금본위 제도의 폐기다. 프랑스와 미국은 물론 식민지인 인도보다도 빨랐다. 그날부터 파운드화와 달러화의 서열이 완전히 뒤집혔다.
셋째 도덕적 설득력 상실이다. 지금 미국은 금융 제재를 통해 러시아와 이란을 옥죈다. 미국 주도로 설립된 국제금융통신망(SWIFT)이 ‘금융의 호르무즈 해협’ 역할을 하고, 러시아와 이란의 자본이 그 안에 인질로 잡혀 있다. 이집트 출신 경제학자 이브라힘 오와이스가 이미 50년 전 그런 일을 예측했다. 미국이 급해지면 ‘인질 자본’의 시대가 열린다는 것이다.
자유시장 원칙을 강조하는 미국이 자본을 인질로 삼는 것은 역설이자 현실이다. 미국 주도의 금융 제재는 그나마 다른 나라들이 협조하기 때문에 유효하다. 그런 국제 공조는 미국의 요구가 설득력을 갖출 때만 유효하다.
지금까지의 추세라면 세계경제에서 미국의 비중이 15% 이하로 하락하는 시점은 30~40년쯤 뒤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공지능(AI) 투자 때문에 좀더 늦춰질 수도 있다. 경제력이 아닌 다른 조건들이 먼저 충족될 듯하다. 이란과 전쟁 중인 트럼프 대통령이 엉뚱한 우방국들에 지원을 압박한다. 방위비가 벅차다는 자백이자 비명이다. 관세정책은 이미 미국 안에서도 설득력을 잃었다. 달러화 패권을 뒤흔들 퍼펙트 스톰은 중동이나 중국이 아닌 미국에서 시작된다.
차현진 호서대 디지털금융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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