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으로 들어갔다 백성으로 나왔다”…나약하지 않았던 어린 ‘왕’의 이야기 [요즘 뭐봐?]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2월 4일 개봉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폐위된 단종이 유배지인 강원 영월군 청령포에서 촌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과 유배 시기를 보내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장항준 감독의 첫 사극 도전작으로 단종의 죽음과 관련된 두 줄짜리 기록에서 시작해 영화적 상상력으로 역사의 간극을 메웠습니다.

특히 처연하지만 강단 있는 비운의 왕 단종(배우 박지훈)과 그의 곁을 끝까지 지킨 엄흥도(배우 유해진)의 우정과 의리가 감동을 자아냅니다. 또한 권력의 핵심인 한명회(배우 유지태)가 만들어내는 갈등 속에서 어린 단종이 평범한 사람들과 교감하는 모습이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입소문에 힘입어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이 많지만, 영화의 여운을 다시 느끼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관객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또한 영화 흥행에 따라 관객들은 작품의 배경이 된 강원도 영월을 직접 방문하거나, 단종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 등 영화의 여운을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개봉 31일째인 지난 6일 오후 6시 30분 기준 누적 관객 10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최근 극장 관객 수가 전반적으로 감소한 상황에서 국내 영화가 천만 관객을 기록한 것은 2024년 ‘파묘’와 ‘범죄도시4’ 이후 약 2년 만입니다.

이번 흥행으로 장항준 감독은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기록한 감독이 됐으며, 배우 유해진은 ‘왕의 남자’, ‘베테랑’, ‘택시운전사’, ‘파묘’에 이어 다섯 번째 천만 영화에 이름을 올리며 기록을 세웠습니다. 단종 역의 박지훈 또한 첫 상업영화로 천만 관객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단종의 생애

문종의 외아들이었던 단종은 조선 왕 중에서 가장 탄탄한 정통성을 지닌 왕입니다. 유학의 나라인 조선은 적장자 상속을 중시했습니다. 단종의 아버지이자 세종의 아들인 문종도 외아들이었으며, 이는 조선 역사상 적장자와 적장손이 2대에 걸쳐 왕위를 계승한 최초의 사례입니다.

그러나 단종은 태어날 때부터 불행했습니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는 단종을 낳고 하루 만에 산후 후유증으로 숨을 거뒀고, 할머니 소헌왕후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 단종을 보호해줄 만한 왕실의 어른이 없었습니다. 1452년 문종의 뒤를 이어 12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나 1453년 계유정난이 발발하게 됩니다.

수양대군은 단종의 측근이었던 김종서, 황보인, 정분 등을 암살하고 권력을 쥡니다. 1456년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김문기 등 단종의 복위를 꾀한 사육신(死六臣)을 처형하고, 이듬해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해 유배를 보냅니다.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은 강과 산으로 막혀 고립됐습니다. 이에 단종은 소나무 아래 앉아 가족을 그리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단종의 유일한 벗이 되어준 이 소나무는 단종의 오열하는 소리를 들은 나무라는 뜻에서 관음송(觀音松)으로 불립니다.

역사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라 결말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왕과 사는 남자’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비운의 왕으로만 그려졌던 어린 왕의 나약하지만은 않은 ‘왕의 면모’를 제대로 조명했기 때문입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권력에 붙은 형제들…홀로 의리 지킨 ‘금성대군’

성품이 강직하고 충성심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진 세종의 6번째 왕자인 금성대군은 세종의 여러 아들들이 세조의 편에 가담해 권력을 누릴 때, 홀로 세종과 맏형인 문종의 뜻을 받들어 어린 단종을 끝까지 보호하려다 최후를 맞이합니다.

금성대군은 1452년 단종이 즉위한 후 형인 수양대군과 함께 물품을 하사받으면서 단종을 보필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후 1453년 수양대군이 정권탈취의 야심을 가지고 왕의 보필 대신인 김종서 등을 제거하자 형에 맞서 조카를 보호하기로 결심합니다.

금성대군은 1455년 왕의 측근을 제거하려는 수양대군에 의해 몇몇 종친과 함께 무사들과 결탁해 당여를 키운다는 죄명을 받고 삭녕에 유배됩니다. 그 해 수양대군은 단종을 핍박해 왕위를 선양받습니다.

이듬해 이에 불만을 품은 성삼문, 박팽년 등이 중심이 돼 단종 복위를 계획했지만 실패했으며, 여기에 가담한 자들은 대부분 처형되고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돼 강원도 영월로 유배됩니다. 이때 금성대군도 삭녕에서 경상도 순흥으로 유배지가 옮겨집니다.

순흥에 안치된 뒤 금성대군은 부사 이보흠과 함께 모의해 고을 군사와 향리를 모으고 도내의 사족들에게 격문을 돌려서 의병을 일으켜 단종 복위를 계획했으나, 거사 전 관노의 고발로 실패로 돌아가 반역죄로 처형당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배우 이준혁이 금성대군 역을 맡아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특히 이준혁이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의 직계 자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모진 고문에도 꺾이지 않은 충심…단종의 수호신 ‘사육신’

어린 왕의 보필을 맡은 이는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김종서 등 문종의 고명을 받은 원로대신과 성삼문, 박팽년 등 집현전학사 출신의 소장문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원로대신들은 이미 나이가 많아 정치 문제에 왕성한 정력을 경주할 수가 없었고, 소장문신들은 아직 관위가 낮아 국가 대사에 직접 참가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인해 황보인, 김종서 등 단종의 보좌 세력은 전부 제거되고 수양대군이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이후 수양대군의 추종 세력인 정인지, 신숙주, 한명회, 권람, 홍윤성 등은 1455년 수양대군을 왕으로 추대하고 단종을 왕위에서 물러나게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 과거 세종과 문종에게 특별한 은총을 받았던 집현전학사 출신인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등 문관은 무관인 유응부, 성승, 박쟁 등과 모의해 단종을 복위시킬 기회를 노리기 시작합니다.

이 집현전학사 출신 문관이 주동이 되어 단종 복위거사를 모의한 것은 1455년 10월경이었습니다. 명나라 사신이 조선에 오겠다고 통고한 이후부터 진행돼 1456년 6월 창덕궁의 명사신 초대연의 자리에서 실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세조 제거의 행동책을 맡은 무신이 갑자기 제외돼 거사 계획은 실패하게 됩니다. 이에 거사 주동자들은 계획을 다음 기회로 미루고 있었는데, 동모자의 한 사람인 김질과 그의 장인 정창손의 고변으로 사육신과 그 밖의 연루자가 모두 처참되고 단종 복위거사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들은 모의가 발각된 후에도 ‘모반을 인정하면 목숨만은 살려준다’는 끈질긴 회유와 끔찍한 고문에 굴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짧았던 만남, 길었던 사랑…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으나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의 삶도 녹록지 않았습니다. 정순왕후는 본관이 여산인 여량부원군 송현수와 여흥부부인 민씨의 딸로 1440년 전북 정읍 태인(현 정읍시)에서 태어났습니다. 1454년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다음 해 단종이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남겨주고 상왕이 되자 의덕왕대비가 됐습니다.

그러나 1456년부터 계속해서 단종복위운동이 일어나면서 사육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제거되자 1457년 단종은 노산군으로 신분이 낮아져 영월로 유배되었고, 정순왕후도 신분이 낮아져 현재의 동대문 밖 정업원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정순왕후는 정업원 뒤쪽 산봉우리(동망봉)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비통한 마음으로 단종을 그리워하며 한 많은 세월을 보냅니다. 이후 1521년 82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1698년 단종이 왕으로 신분이 회복되자 정순왕후도 왕비의 신분을 회복했고, 시호를 정순왕후라 정한 후 종묘에 신주를 모셨습니다.

정순왕후는 15세에 왕비가 되었다가 18세에 단종과 이별하고 평생 혼자 살았던 비운의 왕비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남편에 대한 의리를 지켰던 정순왕후와 관련한 여러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1457년 단종이 영월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정순왕후는 아침저녁으로 산봉우리에 올라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을 향해 통곡했는데 이 곡소리가 산 아랫마을까지 들렸으며, 이를 들은 온 마을 여인들이 땅을 한 번 치고 가슴을 한 번 치는 동정곡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 뒤부터 이 봉우리는 왕후가 동쪽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다 하여 동망봉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또한 영도교 부근에는 부녀자들만 드나드는 금남의 채소시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정순왕후를 동정한 부녀자들이 끼니때마다 정순왕후에게 채소를 가져다주었는데, 이를 궁에서 막자 정순왕후가 거처하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시장을 열어 주변을 혼잡하게 해 몰래 채소를 전해주려는 여인들의 꾀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관람 포인트 1

어린 왕에 완벽 빙의한 배우 박지훈. 몰입을 위해 목소리 톤에 변화를 줬다고 하는데요. 이 점을 주목해보면 좋겠습니다.

관람 포인트 2

영화 속 한명회로 등장하는 배우 유지태. 다른 드라마나 영화 속 한명회와 어떤 차별점을 뒀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겠습니다.

관람 포인트 3

이제는 믿고 보는 ‘천만 배우’ 유해진뿐만 아니라 박지훈, 유지태, 전미도, 이준혁, 김민, 정진운 등 연기 구멍 없는 실력파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해보세요.

이런 사람에게 추천해요

비운의 왕으로 그려져 왔지만 600년이 지나 드디어 청령포에 당나귀를 몰고 온 어린 왕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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