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기후에 고통받는 달동네… 열선 계단, 마음까지 녹였다

기후위기 취약계층 지원 사업 ‘속도’

겨울이면 꽁꽁 어는 산꼭대기 마을
좁고 가파른 오르막 가장 위험한 곳
열선 계단 설치해 안전한 통행 보장
지난 20일 대전 동구 대동 1-1098번지 인근 오르막길 옆에 열선이 깔린 계단이 설치돼 있다. 이 길은 언덕 위 10가구가 겨울철 고립되지 않도록 대전 동구가 2024년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지원으로 마련됐다. 김중래 기자


기후변화로 열대야와 폭염, 폭우 등 날씨의 변덕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기후위기 취약계층 지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후변화의 위협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다가오지만, 그 피해는 취약계층에게 더욱 가혹해서다. 경제적 여건이 어렵거나 주거 환경이 열악한 취약계층에게 기후변화는 곧 생존과 직결된다.

지난 20일에 찾은 대전 동구 대동1-1098번지에는 차량이 다니는 도로 옆으로 가파른 오르막 골목길이 펼쳐져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기울기가 30도는 넘어 보였다. 이 골목길은 언덕 정상 주변에 사는 10가구엔 유일한 통행로다. 그러나 눈이 내리기만 하면 동네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 된다. 골목길에서 만난 안상화(58)씨는 “우리 마을에서도 가장 높은 곳”이라며 “경치는 좋지만 길이 좁고 복잡하니 살기에 불편하다”고 말했다.

과거 이 골목길은 눈이 내리는 날이면 빙판길로 변했다. 차가 들어올 수 없어 제설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계단도 온통 얼어붙어 주민들은 난간을 붙잡은 손에 힘을 잔뜩 줘야 했다.

대전 동구청은 2024년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지원을 받아 이곳에 열선이 깔린 계단을 만들었다. 열선 계단은 눈이 오는 날 언덕 위 주민들의 안전한 통행을 보장하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주민 성모씨는 “열선 계단이 없었을 때는 골목길을 한 번 오르내리고 나면 온몸에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었다”며 “이제는 눈 내리는 날에도 편하게 출근할 수 있다”고 기뻐했다.

한국에너지재단 77만 가구 등 지원
단열·창호 시공하고 냉난방기 교체
경기도 지난해 기후보험 제도 운영
한국에너지재단은 2007년부터 한파와 폭염 등 기후변화에 더욱 취약한 에너지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단열·창호 시공, 고효율 냉·난방기 교체를 지원하고 있다. 재단은 그간 1조 1241억원을 들여 77만 가구와 사회복지시설 4800여곳을 도왔다. 바람이 들어오는 낡은 집에서 폭염과 한파를 버티던 노인을 찾아 냉·난방기구를 지원하고 튼튼한 창문을 달아줬다. 지역아동센터가 넉넉하지 않은 자금으로 어려움을 겪자 고효율 바닥난방 시스템을 무상으로 설치해 주기도 했다. 지원을 받은가구주는“생활 환경에 안정감이 생겨 오랫동안 앓던 우울증과 불면증이 사라졌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경기도는 지난해 3월부터 ‘기후보험’ 운영을 시작했다. 도민 누구나 자동으로 가입되며 기후위기 취약계층에는 특약으로 더 큰 보장이 제공된다. 기후보험은 시행 8개월 만에 총 4만 2278건의 보험금을 지급했다. 기후부는 야외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기후보험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12면 폭염 열대야 한파 일수


앞으로 기후위기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기상청이 발간한 ‘우리나라 113년 기후변화 분석 보고서’를 보면 2020년대 들어 폭염 일수는 산업화 이전인 1910년대 때보다 2.2배, 열대야 일수는 4.2배로 늘었다. 연간 강수량은 줄었지만 한 번 내릴 때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폭우와 폭설 빈도는 더 늘었다. 특히 2024년 연평균 기온과 2025년 여름철 평균 기온이 역대 1위를 경신하는 등 최근 기후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정부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기후변화 ‘완화’정책만큼 기후위기 취약계층 지원 등 이미 변해버린 기후 속에서 잘 살아가기 위한 ‘적응’정책에도 무게를 싣고 있다.

조한나 한국환경연구원(KEI) 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 기후적응협력실장은 “기후위기 취약계층은 단순히 소득이나 복지수준 구분되는 것이 아닌 폭염, 한파, 홍수 등 기후변화의 영향에 더 크게 노출되고 피해를 복구하기 힘든 집단”이라며 “취약계층을 지원해 공간적·사회적 편중을 줄여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일영 기후부 기후에너지정책실장은 “기후위기는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곳에 가장 고통스럽게 다가온다”며 “극한 기후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일상을 지키는데 단 한 분도 소외되지 않도록 촘촘하고 두터운 기후 안전망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기후적응 특별법 추진…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기후변화와 극한 기상이 일상화되면서 정부와 국회는 변화한 기후 속에서도 국민이 생명과 재산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안전망 구축에 나섰다.

2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과 ‘기후 적응 특별법’ 제정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에는 기후위기 취약계층의 정의와 함께 기후대응기금을 취약계층 지원에 쓸 수 있는 근거 규정이 담겼다. 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기후위기 정책을 수립하고 이행할 때 취약계층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건강한 삶을 보장할 책무를 명시한다.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 위원에 기후재정·금융 전문가, 지방자치단체 장 등을 포함하거나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자문기구로 ‘기후시민회의’를 신설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기후적응 특별법에는 기후위기 취약성과 기후위험, 기후회복력 등과 관련한 세부 내용과 함께 국가의 기후위험 평가, 지자체의 기후위기 취약계층 실태조사, 기후적응 정보관리체계 구축, 기후적응 지표 및 진척도 점검, 기후적응 주류화 촉진 등과 관련한 규정이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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