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 ‘이것’ 썼을 뿐인데 ‘좀비 발암물질’ 노출…“태아 안면기형 유발” 경고
이보희 기자
입력 2026 04 16 17:08
수정 2026 04 19 11:26
음식 포장재·방수 화장품 등에 쓰이는 PFAS
“출생 후 아이 골격 이상·발달 장애 등 유발”
잘 분해되지 않아 ‘영원한 화학물질’로 불리는 과불화화합물(PFAS)이 임신 중 노출될 경우 태아의 안면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근 영국 데일리메일은 일상 제품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PFAS에 노출될 경우, 태아 발달 과정에 악영향을 미쳐 아이의 신체 변형이나 건강 이상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PFAS는 물·기름을 튕겨내는 성질 때문에 논스틱 프라이팬, 방수 의류, 플라스틱 식품 포장재, 화장품 등 다양한 생활용품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이다. 문제는 이 물질이 자연에서 거의 분해되지 않고 인체에도 축적된다는 점이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콜로라도 대학교 연구진은 PFAS에 장기간 노출된 지역 주민과 어린이를 조사한 결과, 태아 시기 노출이 특히 위험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임신 중 PFAS에 노출된 경우, 출생 후 아이에게 골격 이상, 발달 장애, 면역 이상 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프라이팬부터 화장품까지 다양한 제품에 흔히 사용되는 139가지 PFAS 화학물질을 검사한 결과, PFDA가 태아의 얼굴 발달에 가장 해로운 물질임을 확인했다.
PFDA는 임신 초기 아기의 얼굴 형태 형성에 필수적인 비타민 A라고도 알려진 레티노산의 작용을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기능 및 생식 건강 전문가인 데보라 리 박사는 “레티노산 수치가 높으면 두개안면 기형을 유발할 수 있고, 눈 발달 부진, 턱 형성 이상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임신 중 여성이 섭취하는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음식과 종이컵에 담긴 음료는 아기의 성장과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면서 “특히 태아의 얼굴과 턱, 눈이 형성되는 임신 4주에서 10주 사이에 가장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부인과 전문의 발렌티나 밀라노바는 “조리 기구, 음식 포장재를 비롯해 의류, 카펫, 워터프루프 화장품, 심지여 일부 생리대에서도 PFDA가 검출됐다”면서 “PFDA는 체내에 수년간 잔류한다. 생물학적 반감기는 12년이므로 임신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노출될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임신 중 PFAS 노출, 자녀 천식 위험 증가” 연구도앞서 스웨덴 연구진은 최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다이렉트’를 통해 PFAS가 임신 중 노출될 경우 아이의 천식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연구진은 2006년부터 2013년 사이 해당 지역에서 태어난 모든 어린이들의 자료와 국가 환자 등록부의 천식 진단 데이터를 비교 분석했다. 특히 임신 기간 동안의 PFAS 노출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산모의 거주지와 지역 상수도 오염 기록을 연계했다.
그 결과 태아 시기에 PFAS에 ‘매우 높은 수준’으로 노출된 경우 소아 천식 발생 가능성이 유의미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PFAS에 오염된 수돗물은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유럽 전역에서 수만 곳의 잠재적 오염원이 존재한다”며 “태아기 노출이 아동기 만성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공중보건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약 1만 종에 달하는 PFAS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방수 소재, 프라이팬 코팅, 화장품, 포장재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PFAS는 자연 상태에서 극히 안정적인 난분해성 물질로, 자연 중이나 생물체 내에 오랜 기간 머무는 탓에 ‘영원한 화학물질’, ‘좀비 발암물질’ 등으로 불린다. 세계 각국이 PFAS의 추가 배출을 금지하는 추세지만 과거 자연 중으로 배출된 양도 막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물질 노출에 따른 건강상의 악영향으로는 암 위험 증가, 간 손상, 불임, 발달 지연, 비만 위험 증가 등이 있다.
미국·EU를 비롯해 한국도 규제 강화 목소리조 바이든 행정부 당시인 2024년 4월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대표적 PFAS로 꼽히는 과불화옥탄술폰산(PFOS)과 과불화옥탄산(PFOA) 기준치를 2029년부터 각각 70ppt(농도의 단위, 1ℓ당 나노그램·1조분의 1)에서 4ppt로 강화하기로 했고, 전체 수도시스템에서 모니터링을 하도록 했다. PFAS 오염 관련 정화 비용을 오염기업에 부담시킨다는 방침도 정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의 환경 규제 철폐 및 완화 흐름 속에서 강력한 PFAS 규제는 일정 부분 후퇴했다. EPA는 지난해 7월 PFOS와 PFOA의 기준치 강화 시점을 2031년으로 2년 연기했고, 다른 PFAS에 대해서는 재검토를 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 화학물질청은 PFAS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대표적 20종의 PFAS의 합계를 100ppt로 제한할 계획이다. 일본의 경우는 2024년 전국 곳곳에서 기준치를 넘어서는 PFAS가 확인되면서 규제 강화 여론이 힘을 얻었다. 일본 환경성은 이달부터 PFOS와 PFOA를 합해 50ppt가 넘지 못하도록 기준치를 강화했다.
한국에서도 낙동강 등 곳곳에서 미국 기준치를 훌쩍 뛰어넘는 PFAS가 확인되면서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이 물질의 수질 기준을 2028년까지 새롭게 마련하기로 했고, 지난 1월에는 이 물질을 단계적으로 퇴출시키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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