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구글에 고정밀 지도 반출 ‘조건부 허가’…보안시설 블러·국내 서버 활용

조중헌 기자
입력 2026 02 27 14:49
수정 2026 02 27 14:49
지도 서비스 시장 해외 기업에 개방
좌표 표시 제거·노출 제한키로
美 ‘비관세 장벽’ 언급 영향 미친듯
정부가 27일 구글이 요구하는 고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조건부로 허가하기로 했다. 안보·보안 위협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술적·행정적 장치를 촘촘하게 부여하며 사후관리 권한을 국내에 두기로 하면서다. 이에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기업이 주도해 왔던 국내 지도 서비스 시장을 처음으로 해외 기업에 개방하게 됐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경기 수원시 영통구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측량 성과 국외 반출 협의체’ 회의를 열고 1대 5000 고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 여부를 논의했다며 이렇 밝혔다.
구글이 반출을 요청한 1대 5000 축척 지도는 실제 거리 50m를 지도상 1cm로 표현한 고정밀 자료다. 현행 공간정보관리법상 1대 2만 5000 축척보다 세밀한 지도를 국외로 반출하려면 국토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협의체는 영상 보안 처리, 좌표 표시 제한, 국내 서버 활용 등의 조건 준수를 전제로 허가를 결정했다. 특히 구글은 스트리트뷰와 구글 어스의 과거 시계열 영상에서도 군사·보안시설이 노출되지 않도록 가림 처리를 의무화해야 한다. 좌표 표시 역시 제거하거나 노출을 제한하기로 했다.
데이터 반출은 구글의 국내 제휴기업이 국내 서버에서 원본 데이터를 가공한 뒤 정부 심사와 검토를 거친 경우에만 허용된다. 내비게이션이나 길찾기 서비스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 반출 대상에 포함되며, 등고선처럼 안보적으로 민감한 자료는 제외된다.
군사·보안시설의 추가나 변경이 있을 경우 정부 요청을 통해 국내 제휴기업이 즉시 수정 작업을 진행해야 하며, 이 모든 절차는 국내 서버 내에서 관리된다.
협의체는 구글에 ‘보안사고 예방 및 대응 프레임워크’를 수립하고, 국가안보 관련 긴급위협 발생 시 즉시 대응 가능한 기술적 조치 마련을 요구했다. 또한 한국 지도 전담관을 국내에 상주시켜 정부와의 상시 소통체계를 유지해야 한다.
정부가 조건 이행 여부를 직접 확인한 뒤 데이터 반출을 허가하며, 지속적인 미이행이나 심각한 위반이 있을 경우 허가를 중단하거나 회수할 수 있다.
협의체는 “정부 검토·확인을 거친 정보만 반출하는 체계를 통해 사후관리 통제권이 확보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며 “이번 반출 결정으로 외국인 관광 증진, 지도 서비스 기반 경제적·기술적 파급 효과, 국내 공간 정보 산업 등에 대한 영향 등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앞서 구글은 2007년과 2016년 한국의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을 요청해왔다. 구글은 현재 1대 2만 5000 축척 지도를 이용해 구글 지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지도 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다며 이보다 5배 더 세밀한 지도 반출을 요구해온 것이다.
다만 국내 서버를 이용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거부당했다. 정부는 지난해 2월 또다시 반출 요청을 받고 같은 해 세 차례 결정을 연기한 바 있다.
그간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은 “3D로 구현할 수 있는 고정밀 디지털 지도가 군 시설 정밀 노출 등 안보 시설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반출에 반대해왔다.
또 세금으로 만든 세계 최고 수준의 고정밀 지도를 해외 기업에 조건 없이 내줄 경우, 네이버 지도·카카오맵·티맵 등 국내 지도 기반 산업뿐 아니라 자율주행과 인공지능(AI) 등 신산업에 고품질 학습 데이터를 제공해 경쟁 격차만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을 찾는 외국인에 대한 ‘구글맵 서비스’를 통해 다양한 신산업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나온다. 구글맵과 연계한 디지털 산업 발전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번에 정부가 국내 기업이 운영하는 국내 서버 이용으로 타협의 가닥을 잡은 데는 미국과의 관세 실무 협상에서 미국 측이 한국의 ‘비관세 장벽’ 문제 해결을 거론하며 압박한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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