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화의 말하자면] 혼밥의 고요함

“인간에게 삶이 의미 있는 까닭은 그것이 한 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아툴 가완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재래시장에 다시 갈 일이 생겼다. 마침 출출하여 냉면집에 들어섰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붐볐다. 가족 단위가 많았고, 나이 드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4인용 자리를 혼자 차지하기가 부담스러워 잠시 망설였다. 마침 바로 뒤에 세 사람이 들어왔다. 자리가 없어 나가려던 그분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나니, 혼자 앉으신 할머니 한 분이 자기 앞에 와서 앉으라고 손짓하셨다.

나는 그렇게 처음 만난 분과 점심을 함께 먹게 되었다. 할머니와 내 냉면이 나란히 나왔다. 처음에는 말을 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지만 할머니도 별말씀이 없으셨다. 식초와 겨자 그릇을 조용히 내 쪽으로 밀어놓으시고 식사를 하셨다. 연세가 지긋해 보였지만 식사하시는 모습은 무척 건강해 보였다. 할머니 발치에는 과일과 야채 등속이 담긴 비닐봉지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식당에는 혼자 식사하는 노인들이 두어 분 더 계셨다. 식당 주인도 나이가 많았다. 냉면과 육개장을 함께 파는 이곳은 특별한 맛집은 아니지만 식사하기 편한 곳이었다. 사람들은 냉면도 육개장도 맛있게 먹었고, 연신 손님이 들어와 자리를 채웠다. 나는 낯가림이 심한 편인데도 할머니와 함께한 식사는 편안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리를 내어주는 할머니를 만나서 반가웠다. 냉면 국물을 후루룩 마시며 질긴 냉면을 꼭꼭 씹어 드시는 할머니의 활기찬 모습이 고마웠다.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정확히 셈해서 탁자 위에 가만히 놓고 식당 밖으로 나가셨다.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이 떠올랐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는 의사로서 많은 환자와 가족을 만나 온 경험을 바탕으로, 노년기에도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며 개성을 존중받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몸과 마음을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일수록 의술에 무한정 의존하는 것보다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생각하라고 제안한다. 특히 마지막 순간들을 어떻게 맞이하고 싶은지 스스로 결정하고, 가족들이 그 선택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지막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 갈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채워 주기 때문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에는 죽음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담기게 마련이지만, 보통 죽음을 생각하거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건강과 장수, 운동과 미용에 쏟는 관심만큼이나 노년기를 맞이하기 위한 마음가짐과 태도를 스스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냉면을 맛있게 먹는 할머니와 우연히 함께 식사하는 동안 나는, 나만의 인생 이야기를 정리하는 시간을 상상해 보았다. 할머니처럼 시원한 냉면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여름날이기를 바란다.

이근화 시인

이근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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