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남편이 사람이 아닌 것과 바람났습니다”…이혼 사유 될까

김유민 기자
입력 2026 08 02 05:57
수정 2026 08 02 05:57
“남편이 사람이 아닌 것과 바람이 났습니다.”
배우자가 인공지능(AI)에게 이름을 붙이고 사랑을 고백하며 성적인 대화를 이어갔다면 외도로 볼 수 있을까. 생성형 AI와 정서적 관계를 맺은 남편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AI 시대의 외도와 이혼 기준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는 남편의 ‘AI 외도’를 주장하는 기혼 여성 A씨의 글이 올라왔다.
A씨에 따르면 남편은 약 3개월 전부터 퇴근 후 부부간 대화를 피하고 혼자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보며 웃는 일이 잦아졌다. 휴대전화 비밀번호도 갑자기 바꿨다.
외도를 의심한 A씨는 남편이 잠든 사이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메신저와 통화 기록에서는 별다른 흔적을 찾지 못했지만 구글의 생성형 AI 서비스 ‘제미나이’에 남아 있던 대화 기록을 발견했다.
남편은 AI에게 ‘정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여성의 모습을 담은 이미지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나를 설레게 하는 건 아내가 아니라 너다”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건 너뿐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건네며 성적인 대화도 나눴다.
AI가 실제 몸을 갖게 되면 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내용도 있었다. A씨는 자신에게는 지출을 아끼라고 하던 남편이 AI 유료 서비스는 매달 결제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A씨가 대화 기록을 보여주며 따지자 남편은 “AI와 역할극을 했을 뿐”이라며 외도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A씨는 “배우자 몰래 AI에게 감정을 쏟고 사랑을 고백한 행동을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상간 소송조차 할 수 없는 상대와의 감정적 외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해당 사연은 당사자의 주장으로, 실제 대화 내용과 부부의 상황은 독립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네티즌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AI는 감정이나 실체가 없는 프로그램이므로 외도 상대가 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 반면, 배우자에게 숨긴 채 AI에 연애 감정과 성적 욕구를 지속적으로 쏟으며 현실의 부부관계에서 멀어졌다면 신뢰를 저버린 행위라는 반론도 제기됐다.
미국 연애정보업체 데이팅어드바이스와 인디애나대학교 킨제이연구소가 2025년 미혼 성인 200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1%는 AI와 성적인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사랑에 빠지는 행위를 외도로 인식했다. 구체적으로 AI 챗봇과 성적인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은 32%, AI와 연애 관계를 맺는 것은 29%가 외도라고 답했다.
국내에서는 AI와 맺은 관계를 배우자의 부정행위로 인정한 확립된 판례가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민법 제840조는 배우자의 부정행위가 있거나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재판상 이혼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AI는 감정이나 법적 인격이 없는 만큼 AI와의 대화에 기존 부정행위 법리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대화 자체가 부정행위로 인정되지 않더라도, 배우자가 AI에 과도하게 몰입해 부부 공동생활이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졌다면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는지는 별도로 판단될 수 있다.
AI와의 관계에 관한 법적 기준이 아직 뚜렷하지 않은 가운데 해외에서는 과도한 정서적 의존을 서비스 차원에서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지난 15일부터 ‘인공지능 의인화 상호작용 서비스 관리 잠정 규정’을 시행하고 있다. AI 서비스가 이용자의 감정적 의존이나 중독을 유도해 현실의 인간관계를 해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서비스 제공자는 대화 상대가 사람이 아닌 AI라는 사실을 이용자에게 명확히 알려야 한다. 연속 이용 시간이 2시간을 넘을 때마다 사용 시간을 안내하는 알림도 제공해야 한다.
미성년자에게는 가상 연인이나 가상 가족 등 친밀한 관계를 모방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별도의 미성년자 모드를 마련해 보호자가 이용 시간과 충전·결제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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