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총리 “브렉시트, 득보다 실이 커”… 재가입 판도라 열었다

양자 관계 정립 ‘국가 토론’ 제안

새달 EU 회담 앞두고 재가입 논쟁
경제 반전·차기 총선 차별화 목적
미·러發 위협도 유럽과 밀착 재촉
여론은 복귀·관계 강화에 우호적
BRITAIN-POLITICS/LABOUR
앤디 버넘 영국 총리. 로이터 연합뉴스


앤디 버넘 영국 총리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둘러싼 국가적 토론을 제안했다. 영국 정치권에서 오랫동안 금기시되던 브렉시트 논쟁에 다시 불이 붙는 가운데, 연말 EU와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정치·경제적 실리를 고려한 발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버넘 총리는 29일(현지시간) 리버풀에서 열린 노동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브렉시트는 득보다 실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브렉시트 찬성파의 약속과 달리 영국이 이민뿐 아니라 경제에 대한 통제권도 일부 잃었다고 주장했다. 버넘 총리는 오는 11월로 예정된 EU와의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영국과 유럽 파트너 국가 간 장기적인 관계를 위한 다양한 선택지를 여러분과 국민에게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버넘 총리는 ‘EU 재가입’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가능성을 배제하지도 않았다. 그가 선택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가운데, 2024년 7월 집권한 노동당 정부가 ‘레드라인’으로 설정했던 EU 재가입이나 유럽 단일시장·관세동맹 복귀 등이 거론된다. 이와 관련 EU는 영국과의 밀착을 환영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히고 있다.

과거 EU 재가입에 찬성했던 버넘 총리는 지난 5월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면서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를 존중한다’며 재가입에 선을 그은 바 있다. 과거 브렉시트 과정에서 경험했던 극심한 정치·경제·사회적 분열이 재현될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EU 재가입 논의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지난 10년간 정치적 금기에 가까웠다.

그랬던 그가 방향을 튼 것은 경제 침체를 반전시키려면 최대 교역 상대인 EU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설정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무역 장벽과 투자 위축으로 성장에 난항을 겪어왔다. 전미경제연구소(NBER) 연구에 따르면 브렉시트로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까지 6~8% 감소했고, 기업 투자는 최대 18% 줄었다.

2029년 차기 총선을 앞두고 브렉시트당을 전신으로 하는 영국개혁당과 차별화하려는 정치적 포석이라는 관측도 있다. 가디언은 노동당이 브렉시트 번복을 시사할 경우 영국개혁당에 공격 빌미를 줄 것을 우려해 왔으나, 이제는 당내에서 EU와의 단순한 관계 개선을 넘어서는 제안을 국민에게 내놓아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고 전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의 지지율은 영국개혁당을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

급변하는 국제 안보 지형도 유럽과의 밀착을 재촉하는 요인이다. 러시아의 위협으로 유럽 내 전쟁 확대 우려가 커진 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럽이 스스로 안보를 책임지라고 압박하고 있다.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유럽과의 결속은 필수가 됐다는 평가다.

영국 내 여론도 EU 재가입에 우호적이다.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가 지난 6월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5%가 EU 재가입을 지지했고, 반대는 34%에 그쳤다. EU 재가입까지는 아니더라도 EU와의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도 59%에 달했다. 반발도 만만치 않다. 리처드 타이스 영국개혁당 부대표는 “버넘은 총리가 된 지 5분 만에 벌써 뒷문을 통해 브뤼셀(EU)로 돌아가려 한다”며 “영국개혁당은 이번 배신행위를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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