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화된 ‘암살자(들)’… “창작 자유·역사 사실 접점 찾아야”

역사 다룬 ‘영화적 허구’ 어디까지

보수단체, 상영중지 촉구 규탄집회
학계 “정치적 공방 대신 숙의 필요”
‘팩션’ 장르, 허구와 사실 구분해야
“책임까지 면제돼선 안 돼” 의견도
영화 ‘암살자(들)’ 상영 중지 촉구 나선 시민단체
박정희대통령생가보존회 등 보수단체들이 30일 경북 구미시 박정희 생가 앞에서 영화 ‘암살자(들)’ 규탄 집회를 열고 상영 중지를 촉구하고 있다. 구미 뉴스1


고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제작진은 역사왜곡 논란에 휩쓸려 고발 조치를 당했다. 보수진영에선 ‘제작진이 흥행을 위해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판을 연일 내놓고 있다. 현재 극단화된 정치 구도에 따라 영화를 둘러싼 논란도 정략적 대결로 흘러가는 양상이다. 이에 시민사회의 숙의를 통해 표현의 자유와 역사적 사실 간의 절충점을 찾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암살자(들) 홍보
30일 서울 한 영화관에 걸린 ‘암살자(들)’ 홍보 영상의 모습. 이지훈 기자


30일 영화계와 경찰 등에 따르면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루고 있다. 지난 23일 개봉해 29일까지 169만 5104명이 관람하며 전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영화는 당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와 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다만 박정희 전 대통령과 중앙정보부가 사건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장면 등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은 “명백한 정치적 프로파간다”라면서 “명백한 사실을 비틀어 역사를 왜곡하고, 고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도 “문세광이 박 전 대통령을 저격하려다 육 여사를 숨지게 했다는 건 당시 수사와 재판을 통해 확인된 역사적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박정희생가보존회 등 구미 지역 보수단체 회원들은 이날 ‘암살자(들)’ 상영 중지를 촉구하는 규탄 집회를 열었다.

논란의 여파로 지난 29일엔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 김원국 대표와 허진호 감독 등은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됐다.

한국 현대사를 다룬 영화를 둘러싼 논란은 과거에도 불거졌다. 10·26 사건을 다룬 2005년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당시 법원은 박씨의 신청을 기각하면서도 일부 장면을 삭제하라고 결정했다. 2024년 영화 ‘건국전쟁’ 역시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은 부각하고 과는 생략하거나 축소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정치적 극단화가 강화되면서 논란의 골이 깊어지고 파장도 커지는 양상이다.

학계에서는 정치적 공방 대신 시민사회의 숙의를 통해 표현의 자유와 역사적 사실 간의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진영 간 갈등이 극심한 현대 ‘파편사회’의 각박함을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모두가 타협 없이 각자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시민사회의 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창작자에게 표현의 자유는 널리 보장돼야 하지만, 사회가 공유하는 역사 인식과 합의에서 벗어난다면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책임까지 면제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화적 ‘허구’와 역사적 ‘사실’을 구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권 대학 역사학과 교수는 “역사학자는 주어진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적 상상력’을 제한적으로 활용하지만, 문화예술은 그런 제한이 비교적 적다”며 “모든 문화콘텐츠에 대해 왜곡 여부를 지적하는 건 불가능할 뿐더러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 연구자는 “‘팩션’이라는 장르 자체가 상상력을 동원하는 특성 때문에 논란은 항상 벌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각자 문제제기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팩션의 특성은 또 그것대로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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