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 전 못 낸 아이 기차표값”…영등포역에 500만원 두고 간 80대 할머니 [이슈픽]
이보희 기자
입력 2026 09 14 18:07
수정 2026 09 14 18:07
48년 전 돈 없어 초등생 아이 기차표 못 사
“그냥 가세요” 역장 배려 마음에 새겨
48년 전 형편이 어려워 아이의 기차표값을 내지 못했던 한 여성이 80대가 된 뒤 당시 받은 배려를 잊지 않고 마음의 빚을 갚았다.
14일 한국철도공사 수도권 서부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오전 80대 여성 A씨는 서울 영등포역을 찾아 자필 편지와 함께 현금 50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A씨는 편지에서 “저는 아주 오래된 빚을 갚으려 한다”고 운을 뗐다. 그는 “1978년 10월 정읍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영등포역에 왔다”며 “그때 우리 아이는 초등학생이었는데 돈이 없어서 제 차표만 사고 아이는 표가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역장님은 아이 차비로 500원을 내라고 하셨지만 우리가 가진 것은 토큰 한 개뿐이었다”며 “역장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고맙게도 그냥 가라고 하셨다”고 적었다.
A씨는 “절을 하고 돌아서면서 이 돈은 내가 죽기 전에 갚겠다고 다짐했다”며 “지금은 많이 늦었지만, 그리고 많이 부족하지만 조금이라도 받아달라. 그동안 많이 고맙고 감사했다”고 전했다.
A씨는 자신을 ‘난곡동 할매’라고 소개하며 편지를 마무리했다. 정성스럽게 한 글자씩 눌러쓴 편지에는 맞춤법이 다소 틀린 부분도 있었지만, 48년간 잊지 않고 간직해 온 감사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난곡동 할매께”…영등포역 직원들의 답장
A씨의 사연을 접한 영등포역 직원들은 지난 13일 역사 내 알림판에 ‘난곡동 할매께’라는 제목의 답장을 게시했다.
직원들은 “그날 어머니께서 영등포역에 건네주신 용기와 따뜻한 마음, 그리고 큰 감동 덕분에 매일을 선물처럼 보내고 있다”며 “어머니께서는 저희에게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지, 누군가에게 받은 배려와 친절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보여주셨다”고 전했다.
이어 “무엇보다 저희가 역무원으로서 고객 한 분 한 분께 어떤 마음으로 다가가야 하는지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며 “어머니께서 보여주신 마음을 오래도록 잊지 않겠다. 저희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마음과 좋은 기억을 전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A씨는 투병 중이던 아들이 최근 세상을 떠난 뒤, 더 늦기 전에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 온 빚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해 편지와 현금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철도공사 수도권 서부본부 관계자는 “할머니께서 현금을 주셨을 때 완강히 거절했지만 꼭 영등포역에 주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끝내 받게 됐다”며 “신원 밝히기를 원하지 않으셔서 감사한 마음을 전할 방법을 고민하다 역사 내에 답장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금액을 떠나 따뜻한 마음을 되새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철도 구성원 모두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다짐했고, 이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부본부는 A씨가 전달한 500만원을 기타수익으로 처리한 뒤 향후 사용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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