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신뢰 잃고 집값 잡을 수 있나

박상숙 기자
입력 2026 09 14 21:25
수정 2026 09 15 00:48
이번 내각도 ‘부동산 내로남불’
신뢰 잃은 정책은 백약이 무효
86주 상승이 드러낸 시장 현실
오만 버리고 방향 전환 나설 때
‘나 홀로 볼링’으로 잘 알려진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자산을 ‘사회적 자본’이라고 불렀다. 사람 사이의 신뢰와 호혜, 사회적 연결망이 두터울수록 협력이 쉬워지고 제도도 잘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국민의 수용이 중요한 정책일수록 이 힘은 결정적이다. 세금과 대출, 개인의 재산권이 한꺼번에 얽힌 부동산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정책 수용성은 기준의 일관성에서 비롯된다. 이재명 정부는 국민에게 ‘집을 향한 욕망을 절제하라’면서 정작 권력 안에서는 같은 욕망에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
다주택자에 이어 비거주 1주택자까지 세금으로 압박하는 와중에 이번 개각은 그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난해 말 청와대 참모 48명 가운데 12명이 다주택자였는데 새 내각 후보자들의 부동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신철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웬만한 사람은 존재조차 모르는 ‘철거민 특별분양’으로 서초 아파트를 마련했다. 야당은 군 복무 중 위장전입 의혹을 제기했고 후보자는 적법한 청약이었다고 맞선다. 부친·형·고모까지 같은 특별분양에 얽혔다는 의혹도 있다. “군인만 하기엔 아까운 부동산 감각”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이형일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과천 아파트를 17년 보유하고도 실제 거주는 넉 달이었다. 이소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서울 아파트를 임대하고 다른 곳에서 전세로 산다. 홍지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10억원대 아파트를 사면서 주택담보대출에 장모에게 빌린 돈까지 보탠 ‘영끌 매수’로 논란이 됐다. 이런 인선은 정부가 내세운 부동산 정책의 명분을 스스로 약화시킨다.
사람들은 직장이나 학업 때문에 거처를 옮기면 살던 집을 세놓기도 하고, 더 나은 집을 마련하려 대출을 받아 허리띠를 졸라맨다. 자녀 교육이나 출퇴근 때문에 당장 사는 집과 보유한 집이 달라지는 경우도 흔하다.
집은 거처이면서 가장 큰 자산이고 노후의 버팀목이다. 내 집 한 채에 재산 대부분이 묶인 국민에게 집값은 생활의 안전판이기도 하다. 가진 재산의 가치가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도 특별한 탐욕이 아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 복잡한 현실을 외면한 채 ‘실수요냐 투기냐’로 갈라쳤다. 이 대통령은 부동산은 필요해서 보유하는 것이지 돈을 벌기 위해 갖는 것이 아니라는 취지로 말했고, 부동산 정책 조직에서는 “용지를 복사하는 직원조차도 다주택자는 안 된다”고까지 했다. 남의 집엔 원칙, 제 집엔 사정이다.
서울 아파트값은 역대 최장 기록을 넘어 86주 연속 올랐다. 정부 정책을 옹호하던 전문가들도 하나둘 등을 돌렸다. 끝까지 정부 편에 섰던 전문가마저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서 “이대로 가면 부동산 폭등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한 뒤 “부동산 얘기를 하는 게 괴롭다”고 토로했다. 정책은 더 세졌지만 시장의 불안은 가라앉지 않았다.
부동산 정상화를 계곡 정비보다 훨씬 쉬운 일로 보고, 시장과의 힘겨루기에서도 정부가 밀리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다. 그러나 불법 평상을 철거하는 행정과 수천만 명의 이해와 기대가 얽힌 시장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시장은 힘으로 눌러 사라지게 할 대상이 아니다. 사람들의 욕망과 선택을 인정한 위에서 공급·세제·금융 정책을 짜는 것이 진짜 정부의 몫이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최근 이 대통령의 ‘만독불침’식 자신감이 이제 독약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정치적 승부사의 확신이 정책에선 현실을 얕보는 오만으로 변한다는 뜻일 것이다. 부동산처럼 이해가 복잡하게 충돌하는 시장일수록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고 잘못된 판단을 고칠 줄 아는 겸손이다.
공자는 정치에 필요한 식량과 병력, 백성의 믿음 가운데 부득이하게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면 군대와 식량은 버릴지언정 백성의 믿음만큼은 끝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고 꼽았다.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 아무리 대책을 내놓아도 약발이 들지 않는다. 2500년 전의 교훈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박상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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