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 총칼 들고 싸워 왔다…전장서 스스로 증명한 전사들

여자들은 언제나 싸웠다
세라 퍼시 지음/ 정해영 옮김
메멘토/ 624쪽/ 3만 8000원

바이킹·美 남북전쟁 사례 확인
베트남전 전투·보급 ‘숨은 병력’
군 복무, 시민권·지위 요구 근거
쿠르드 군인
쿠르디스탄노동자당(PKK)과 산하 조직들은 성평등을 명시적인 이념으로 내세우며 여성의 리더십과 전투 참여를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사진은 2014년 8월 PKK가 공개한 여성 전투원들의 모습. 메멘토 제공


스웨덴 비르카의 바이킹 전사 무덤 ‘Bj.581’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무덤 주인은 여성으로 밝혀졌다. 유라시아 대초원 지대 무덤의 37%가 전투에 참여한 여성들의 것이었다.

1세기 로마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켈트족 왕비 부디카, 수십 년간 포르투갈에 맞서 싸운 은동고의 여왕 은징가도 전쟁 한복판에 있었다. ‘여성도 전투에 나설 수 있느냐’는 질문에 책은 “역사가 이미 답을 내놨다”고 말한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용병의 역사를 연구해 온 저자 세라 퍼시 호주 퀸즐랜드대 부교수는 바이킹 여전사부터 현대 여군까지, 전장에 섰던 여성 전사들을 추적했다. 여성들이 실제로 싸워온 역사와 ‘여성은 전투하지 않았다’는 통념 사이의 간극을 짚고, 그 간극을 만든 제도와 기록 방식을 파고든다.

편집용 책 표지
취재 부서 기사 편집용 책 표지


미국 남북전쟁 때 ‘프랭클린 톰프슨’이라는 남성 이름으로 북군에 입대한 세라 에드먼즈가 대표적인 사례다. 에드먼즈는 중매결혼을 피하려 전쟁 2년 전부터 남자로 살았다. 북군에서 2년 가까이 복무하던 중 말라리아에 걸렸고, 치료를 받다 정체가 드러날까 우려해 부대를 떠났다. 이 일로 탈영병으로 기록됐다.

중년에 건강이 나빠져 연금이 필요해지자 또 한 번 싸워야 했다. 그는 동료 군인들의 도움을 받아 의회에 청원했다. 상원 장애연금위원회는 “에드먼즈가 함께 행군하고 함께 싸웠다”고 보고했다. 1886년 탈영 기록을 지우는 법안이 통과됐고, 그는 189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연금을 받았다. 그러나 1909년 탐사보도 기자 아이다 타벨이 여성의 남북전쟁 복무 기록을 묻자 미 육군 부관감실은 “구체적인 공식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답하기도 했다.

여성을 병력으로 셈하지 않은 계산은 적의 전력을 잘못 읽는 오판으로 이어졌다. 1960년대 베트남전 당시 미군 총사령관 윌리엄 웨스트모얼랜드는 베트콩을 충분히 제거하면 북베트남이 싸움을 포기하리라고 봤다. 하지만 그가 헤아린 적 병력에는 전투와 각종 필수 임무를 맡은 여성들의 숫자가 빠져 있었다.

미군은 라오스와 캄보디아로 이어진 보급로 ‘호찌민 루트’의 주요 다리와 철도를 파괴하는 데만 7년을 허비했다. 그 지역 남성 인력만으로는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없었던 일이다. 실제로 보급로를 지킨 이들 가운데에는 엄청난 수의 여성이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1945년 이후 가장 흔한 전쟁은 내전이었고, 수많은 여성이 그 전장에 섰다. 그러나 강대국들이 내전을 ‘진짜’ 전쟁으로 여기지 않으면서 이들의 싸움도 예외로 취급됐다.

제도의 빗장이 풀린 뒤에도 군대 안의 성폭력과 배타적 문화라는 과제는 남는다. 호주에서는 1995년 이후 방위군 내 성폭력을 다룬 대규모 조사만 13건이 진행됐다. 2013년 호주 육군이 또다시 여군 대상 성폭력·성추행 파문에 휩싸이자 육군참모총장 데이비드 모리슨 중장은 전 장병에게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동료를 비하하거나 부당하게 이용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육군에 설 자리가 없다”고 했다.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모든 작전에서 여군들이 스스로를 증명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면 인생에서 다른 할 일을 찾으라”고 경고했다.

저자는 ‘여성을 추가하고 섞기만 하면’ 군대가 바뀌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진짜 변화는 지도부의 의지와 군대 문화의 대대적인 개혁을 거치며 더디게 진행된다고 짚는다. 근대 국가에서 군 복무는 시민권을 요구하는 근거였고 전투 경험은 군 안의 지위와 권력으로 이어졌다. 여성의 전투 배제가 보직 문제를 넘어 권리와 기회의 문제였던 이유다. 책은 ‘여성도 싸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싸워온 여성들을 왜 지워왔는가’로 바꿔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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