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대] 지방시대라지만 지방엔 돈이 없다

지방시대를 말하지만 지방에는 돈이 없다. 지역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하고 주민 삶을 책임지라고 하지만 정작 지방정부가 쓸 수 있는 재원은 빠듯하다. 세수는 줄고 복지와 안전 비용은 늘어나는데 중앙정부 공모·보조사업에 댈 지방비 부담까지 가중된다. ‘과거 방만 경영의 여파’라는 지적을 곱씹으며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으나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올해 국세 수입이 연초 예상치보다 63조원 넘게 늘어난 478조원대로 전망된다는 이야기가 남의 집 잔치 소리처럼 아득하다. 지방의 권한과 책임을 강조하는 시대, 지방의 재정은 오히려 중앙의 결정에 더 크게 좌우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추미애 경기지사의 ‘재정 빨대’ 발언은 이런 현실을 드러낸 장면이다. 추 지사는 지난 13일 국정감사에서 소방 예산을 두고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고 말했다. 소방공무원을 비하하려는 뜻은 아니었다고 사과했지만 표현의 부적절함과 별개로 발언 배경에 놓인 지방재정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소방관은 국가직이다. 그러나 인력·장비 유지 비용 대부분은 지방이 짊어진다. 올해 전국 시·도 소방재원 8조 5967억원 중 지자체 부담은 89.3%(7조 5678억원)에 달한다. 소방안전교부세와 국고보조금 등 중앙정부의 지원은 10.7%(9239억원)에 불과하다. 2020년 국가직 전환 직후 2021년 14.9%까지 올랐던 국비 비중은 이듬해부터 뒷걸음질 치더니 10%대로 떨어졌다.

지자체 재정력 차이는 현장 대응 역량과 처우의 양극화로 연결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소방관 1인당 피복비는 울산이 70만원인 반면 부산·제주는 25만원, 경남은 35만원에 그쳤다. 지역별 건강검진비는 2.7배, 위탁교육비는 10.4배까지 벌어졌다. 소방관의 안전과 전문성마저 ‘어느 지자체’에 속했느냐에 따라 갈린다.

소방재원은 지방재정 위기의 일부분일 뿐이다. 경기도가 세출 구조조정에 나선 데 이어 대전·충북·인천 등 전국 곳곳에서 대형 사업을 중단하거나 재검토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 악화에 따른 세수 감소, 복지 지출 증가, 국고보조사업의 지방비 부담 등이 얽혀 지방정부의 목을 옥죄고 있다.

박완수 경남지사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제시한 수치는 한층 적나라하다. 경남의 연간 예산 14조원 중 도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예산은 5000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여기서 정부·지자체 매칭 사업인 농어촌 기본소득이 도내 10개 군으로 확대되면 연 4000억원이 추가로 들어간다. 정부 사업 보조를 맞추다 곳간이 바닥을 드러낼 지경이다.

오죽하면 ‘인구감소지역 지정’을 환영하고 제외되면 불만을 터뜨리는 일까지 벌어진다. 인구감소라는 뼈아픈 현실이 정부 지원금을 따내는 명분이 되어서다. 지방정부의 완충 장치마저 동나고 있다. 비수도권 14개 광역지자체의 재정안정화계정 잔액은 2022년 말 7546억원에서 지난해 말 3467억원으로 54.1% 급감했다. 스스로 재원을 마련하거나 예상치 못한 지출 발생 때 버틸 여력이 약해지니 기댈 곳은 정부뿐인, 지방시대의 우울한 초상이다.

물론 모든 부담을 중앙정부로 돌려서는 안 된다. 지방정부 역시 선심성 지출을 자제하고 실효성이 떨어진 사업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그러나 긴축만으로 지방재정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다. 정부 사업의 국비 부담률 상향, 법인세 일부의 광역지방세 이양 등 지방의 자율 재원을 확충하는 논의가 시급하다. 책임만 지우고 곳간은 알아서 채우라는 식이라면 지방시대는 허울 좋은 구호로 끝날 수밖에 없다.

이창언 전국부 기자

이창언 전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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