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제발 오보이길, 익스플로러스웹 “김홍빈 대장 사망”
임병선 기자
입력 2021 07 20 05:00
수정 2021 07 20 10:18
김홍빈 대장과 함께 파키스탄 카라코람 산군에서 세 번째로 높은 브로드피크에 있었던 러시아 등반대의 안톤 푸고프킨에 따르면 김 대장은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등정 성공 뒤 하룻밤을 보낸 캠프4에서 하산하는 과정에 15m 깊이의 크레바스에 추락하고 말았다. 푸고프킨과 아래 김 대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비탈리 라조는 정상을 밟은 뒤 스키를 타고 하산하다 캠프3(해발 고도 7100m) 주변에서 두 차례나 구조 신호를 포착했다.
첫 신호는 자정쯤 같은 러시아의 아나스타샤 루노바가 크레바스에 떨어져 보낸 것이었다. 러시아 산악인들이 달려가 루노바는 심각한 부상 없이 구조해 캠프3로 후송된 뒤 여러 명이 함께 루노바를 더 아래로 옮겼다.
익스플로러스웹은 라조와 함께 있던 산악인들이 아직도 고산에 있으며 날이 벌써 어두워진 데다 더 나쁜 날씨가 예보돼 걱정된다며 기사를 맺었다. 기사에 따르면 더 이상 수색이나 구조 활동을 포기했다는 얘기로 들린다. 파키스탄 주재 한국 대사관은 파키스탄 군에 헬리콥터 파견을 요청해 20일 날이 밝는 대로 수색 및 구조를 재개하길 희망하지만 김 대장이 실종된 해발 고도 7900m 지점이 극도로 생존에 열악한 점, 날씨 변화가 극심한 점을 감안하면 원활히 수색과 구조 활동이 가능할지 자신할 수 없다.
전날 아시아 산악인들과 직접 소통 채널을 갖고 있는 아시아산악연맹의 이인정 회장은 “김홍빈 대장이 정상 등정 이후 하산 과정에서 실종됐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현지에 있던 해외 등반대가 구조에 나섰지만 실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해 모두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대한산악연맹은 김 대장의 실종 소식을 듣고 사태 파악에 나섰다.
김 대장은 지난 18일 오후 4시 58분(한국시간 오후 8시 58분) 브로드피크 등정에 성공했다. 김홍빈 대장의 정상 등정은 여러 외국 원정대를 통해 확인됐다. 1991년 북미 최고봉 디날리(해발 고도 6194m, 옛 이름 매킨리)에서 동상으로 열 손가락을 모두 잃은 김 대장은 장애인으로는 처음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열 손가락을 잃은 그가 부상보다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귀국하지 않자 어머니는 “한 번만이라도 고향에 돌아와 어미가 지어준 밥을 먹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고, 3개월 만에 돌아와 어머니를 만난 일은 산악인들에게 전해지는 너무도 슬픈 얘기다. 광주대 산악부 선후배들이 손가락을 모두 잃은 그를 대신해 옷을 입혀주고 생리 현상을 해결해줬다. 그렇게 30년 악전고투하며 장애인 최초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역사를 일궜다.
한때 해외 등반대가 김 대장을 구조해 안전하게 하산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잘못된 정보였다. 광주장애인체육회는 “해외 등반대가 크레바스에서 조난된 김 대장을 발견하고 의식이 있는 것까지 확인했다”며 “주마(등강기)를 내려보내 15m까지 끌어올렸지만 줄이 끊겨 낭떠러지 아래로 다시 추락했다”고 전했다. 앞의 익스플로러스웹 기사를 보면 러시아 여성과 김 대장의 구조 얘기가 섞였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물론 러시아 등반대가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면 조금 더 정확한 경위가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장애인 최초로 7대륙 최고봉 완등에 성공한 그는 2019년 7월 세계 제11위 봉인 가셔브룸Ⅰ(해발 고도 8068m·파키스탄) 정상에 오르면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가운데 13개 봉우리 등정을 마치고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도전하려다 무산되고 올해 재도전해 마침내 14좌 완등을 달성했지만 안타깝게도 하산 도중 조난을 당하고 말았다.
김 대장의 히말라야 14좌 완등 소식에 기뻐하던 광주 시민과 산악인들은 19일 늦은 밤 김 대장의 실종 소식이 갑작스럽게 전해지자 큰 충격에 빠졌다. 이날 오후 하산 중 실종됐다는 소식에 한때 긴장했다가 구조됐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했던 터에 다시 실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충격이 더 컸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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