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男 끌고 가더니 사라져” 충격…취약계층 남성들 노렸다 [월드픽]
하승연 기자
입력 2026 10 27 10:42
수정 2026 10 27 19:45
러시아, 취약계층 노린 강제 징집 의혹 제기
채무·질병·알코올 의존 겪는 남성들 표적
병력 모집 보상금 노린 ‘현상금 사냥꾼’ 의혹도
“그들이 그를 차에 태우더니 강제로 서명시켰어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병력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가 채무나 질병, 알코올 의존 등으로 취약한 처지에 놓인 남성들을 강제로 징집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6일(현지시간) 미 CNN 방송은 강제 징집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러시아인들의 증언을 소개하며 5년째에 접어든 러시아의 병력 모집 방식에 조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2022년 대규모 동원령을 내린 뒤 공포에 질린 국민이 대거 국외로 탈출하자 주로 거액의 금전적 보상을 내걸고 전쟁에 투입할 병력을 모집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방식이 강압과 기만으로 대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러시아 서부의 한 도시에서 국영 방산업체에 근무하던 50대 후반 남성은 지난 7월 아파트 밖에서 사복 차림의 남성 여러 명에게 붙잡혀 차량에 태워졌다. 이 남성은 혈관 질환과 알코올 의존 문제가 있어 거의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다고 친척은 CNN에 전했다.
당시 남성을 붙잡은 이들은 서류를 내밀며 서명을 요구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서류는 군 입대 계약서였다. 그는 서명한 뒤 일단 귀가했지만 일주일 만에 자취를 감췄다.
며칠 후 가족에게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의 훈련장에 있다는 연락을 해 왔고, 지난달 말에는 전투 중 실종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친척은 “요즘 잠도 잘 오지 않고, 때때로 그들이 저를 잡으러 오는 악몽을 꾸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러시아인은 인권단체를 통해 자신의 형제도 지난 7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들에게 붙잡혀 입대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주장했다. 가족이 석방을 요청했지만 군검찰은 해당 남성이 자발적으로 입대했다고 결론 내렸다.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이 남성 역시 전투 중 실종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군사 전문 변호사 아르툠 클리가는 올여름부터 이와 유사한 사건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사례가 급증했다고 밝혔다. 의뢰인 대부분은 빚이 있거나 건강 문제 또는 알코올 의존을 겪는 등 취약한 처지에 놓인 남성들이었다.
클리가는 이들에 대해 “사실상 거절할 기회조차 없고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며 강제 징집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 됐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남성들을 데려가는 이들의 신원도 명확하지 않다. 이에 병력 모집을 돕고 보상금을 챙기려는 일반인들이 사실상 징집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한 제보자는 이들을 ‘현상금 사냥꾼’이라고 표현했다.
러시아군에 징집된 남성의 친척은 CNN에 “모집책들은 보상금을 받기 위해 사람들을 사실상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러시아 지방정부는 입대 계약 체결을 돕는 사람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러시아 랴잔주는 지난해 8월 병력 모집에 기여한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보상금은 계약 병사 1명당 세후 5만~30만 루블(약 82만~491만원) 수준이었다.
러시아 반전 단체 ‘새로운 대안 경로’는 이러한 제도를 ‘친구를 데려오면 보상을 주는 식의 판촉 행사’에 비유하며 비판했다. 이 단체는 “술에 취한 사람이든 노숙자든 아무나 끌고 가 계약서에 서명하게 하고 돈을 챙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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