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럽죠? 우린 매일 시끄러워요” 명절에 일어난 층간소음 살인극… ‘아랫집 살인마’의 잔혹한 기행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정연호 기자
입력 2026 09 24 16:12
수정 2026 09 24 16:12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은 대한민국을 뒤흔든 주요 사건들을 통해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시리즈입니다. 과거의 기록을 되짚으며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고 정의와 안전의 가치를 깊이 있게 고찰하는 서울신문의 특화 기사입니다. 서울신문은 기사 내용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AI 음성을 이용해 기사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지난 설 연휴 첫 날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층간 소음 갈등’으로 이웃을 살해한 피의자 김모(45)씨가 13일 오후 경기 수원시 영통전화국 앞 공중전화에서 붙잡혀 서울 중랑경찰서로 송치되고 있다. 2013.2.13/뉴스1
가장 평화로워야 할 설 명절 연휴 첫날, 아파트 단지를 뒤흔든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랜만에 부모님 댁을 찾은 30대 형제가 한날한시에 참변을 당했다. 비극의 원인은 다름 아닌 ‘층간소음’이었다. 사소한 말다툼으로 시작된 이웃 간 불화가 순식간에 두 생명을 앗아간 끔찍한 살인극으로 돌변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인 2013년 2월 9일, 구정 연휴가 시작된 첫날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한 아파트 단지는 감당하기 힘든 참극의 현장으로 변했다. 층간소음이라는 사소해 보이는 갈등에서 시작된 감정의 골이 결국 윗집 노부부를 찾아온 30대 아들 형제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명절을 앞두고 우리 사회에 이웃 간 배려와 공동체 의식의 부재가 가져온 참혹한 결과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이른바 ‘중랑구 면목동 층간소음 형제 살해 사건’의 전말을 추적했다.
“아랫집 민원입니다”… 사과로 시작된 대화가 부른 화근사건 당일 오후 5시쯤, 30대 초반의 두 아들이 방문해 평소보다 조금 분주했던 윗집으로 경비실의 인터폰이 울렸다. 아랫집에서 층간소음 민원이 들어왔으니 주의해 달라는 연락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모시고 있던 어머니는 이웃 간 불미스러운 일을 원치 않아 직접 사과하기 위해 경비실을 통해 아랫집과 통화를 했다. 그러나 정중한 사과로 마무리될 줄 알았던 상황은 10분쯤 지나 거칠게 현관문을 차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문을 열자 아랫집에 사는 여성과 한 남성이 서 있었다. 남성은 현관문을 위협적으로 발로 차며 “시끄럽죠? 우리는 매일 이렇게 시끄럽게 살아요”라며 고성을 질렀다. 부모님이 위협당하는 모습을 본 두 아들이 밖으로 나와 남성을 말리면서 거친 말다툼이 시작됐다. 어머니의 만류에 남성은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아랫집 여성과 함께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이 남성은 평소 차 트렁크에 보관해 오던 흉기를 챙겨 혼자 다시 윗집으로 올라와 두 아들을 아파트 밖 화단으로 불러냈다.
한날한시 부모님 곁을 떠난 두 아들범인은 아랫집 여성의 내연남이었던 40대 후반의 대리기사 김 모(당시 45세) 씨였다. 아파트 공동 현관 앞과 화단 인근으로 나온 두 형제와 김 씨 사이에는 거친 언쟁이 오갔고, 이성을 잃은 김 씨는 숨겨 온 흉기를 형제에게 무차별적으로 휘둘렀다.
먼저 흉기에 가슴 등 5군데를 찔린 형이 공동 현관 앞에 쓰러졌다. 이를 보고 깜짝 놀란 동생이 도망치다 화단에 걸려 넘어지자 김 씨는 쓰러진 동생의 위에 올라타 3차례 더 흉기를 휘둘러 가슴 등에 6개의 자창을 입혔다. 끔찍한 공격을 가한 김 씨는 아파트 건물 안으로 유유히 도주했다.
구급대의 신속한 출동으로 두 형제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치명적인 장기 손상과 과다 출혈로 끝내 한날한시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설 명절 부모님께 효도하고자 찾아왔던 젊은 두 청년의 비보에 유족들은 비통함에 넋을 잃었다.
범행 직후 노래방 유흥부터 채권자 협박까지… 기괴한 폭주범행 직후 내연녀의 집으로 올라가 옷가지를 챙긴 김 씨는 내연녀의 차를 타고 신림동으로 도주했다. 이후 그의 행적은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인물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기괴하고 대범했다. 도주 직후 김 씨는 2009년 자신이 2,500만 원을 빌린 뒤 갚지 않아 법적 다툼을 벌이던 50대 채권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가 죽기 전에 너는 죽이고 간다”며 또 다른 살인을 예고하는 협박을 가했다.
실제로 그가 범행에 사용한 흉기는 과거 이 채권자를 위협하기 위해 1년 전부터 차 트렁크에 보관해 오던 것이었다. 이후 김 씨는 신림동의 지인 집을 찾아가 화장실에서 피 묻은 옷을 씻고 목동으로 이동해 지인들과 횟집에서 술을 마시는 기행을 이어갔다. 술자리에서 그는 “홧김에 윗집 아들을 찔렀다”고 태연하게 말했지만 지인들은 그저 장난으로 여겼다.
기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유흥 도우미까지 불러 술을 마셨다. 새벽이 되자 수년 동안 연락을 끊고 살던 누나와 전처에게 전화를 걸어 범행 사실을 털어놓고 유언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다.
“도피 자금 70만 원을 노려라”… 수사망에 걸려든 범인김 씨는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찜질방에서 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휴대전화를 껐다 켜기를 반복하는 수법으로 신림동, 목동, 부천, 의정부 일대를 치밀하게 돌아다녔다.
자칫 장기화될 수 있었던 범인의 도피 행각을 끝낸 것은 담당 형사의 예리한 판세 읽기였다. 경찰은 빈털터리가 된 김 씨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도피 자금’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김 씨가 과거 대리운전 기사로 일했던 주점에 밀린 월급 70만 원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경찰은 즉시 업소 실장에게 연락해 “돈을 보내 달라는 전화가 오면 계좌이체를 미루며 시간을 끌어 달라”고 협조를 요청했다.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도피 자금이 바닥난 김 씨가 의정부와 수원의 공중전화를 돌며 업소 실장에게 월급 입금을 거듭 독촉한 것이다. 전화를 끊지 않고 시간을 버는 사이, 발신지를 추적해 부근에서 대기 중이던 경찰 수사팀이 신속히 출동해 수원의 한 공중전화 부스에서 김 씨를 전격 체포했다. 도주 5일 만에 핏빛 도주극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내 아들이 소중하듯 남의 목숨도…” 어머니의 눈물과 무기징역체포된 김 씨는 끝까지 뻔뻔했다. “처음에는 위협만 주려고 했는데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했다”며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고, 자신의 형량을 줄여 보고자 국민참여재판까지 신청했다.
그러나 법정에 선 피해자 어머니의 발언은 재판장에 모인 수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내 아들들이 소중하듯이 사람 목숨은 다 귀중합니다. 그래서 피의자를 죽여 달라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두 아들을 한날한시에 잃은 상상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도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한 어머니의 눈물 어린 호소는 법정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동정표를 얻어 감형을 노렸던 범인의 이기적인 계산과 달리, 배심원단 9명 중 6명이 무기징역 의견을 냈고 재판부 역시 잔혹한 범행을 엄중히 단죄하여 김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범인은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처벌을 받게 되었다.
정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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