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의 호모 폴리티쿠스] 설명의 책임
입력 2026 10 01 00:50
수정 2026 10 01 04:45
“올바른 의무” 키케로의 공직론
싸워서라도 얻는 ‘전리품’ 전락
靑, 인사 질문을 가십으로 치부
설명 책임 안 지는 권력자는 왕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지명에서 낙마에 이르는 긴 과정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된 걸까. 우선 정치가 너무 나빠졌다.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을 했다. 후보자의 적격성을 검증하고 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상임위 국회의원들은 막무가내였다. 후보자의 자질 문제 이전에 의원들의 수준 문제부터가 깊은 회의감을 갖게 했다.정치는 부패했다. 부패는 ‘목적의 변질’을 뜻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의 중심 개념이다. “공공선의 추구를 목적으로 삼는 인간 활동”인 정치가 부패했다는 것은 공공선이 아니라 사익을 위한 것으로 그 목적이 타락했음을 뜻한다. 자리가 주는 즐거움을 추구하려거든 공직이 아닌 다른 직분을 찾았어야 했으나, 사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상임위원장과 후보자가 버티기만 한 것은 모두를 고통스럽게 했다.
공직의 윤리적 기초를 생각해 본다. 로마 공화정을 대표하는 정치가 키케로는 공직(officium)을 ‘올바른 의무’로 정의했다. 우리의 경우 공직은 기회를 노리는 이들이 싸워서라도 얻고자 하는 전리품 같아졌다. 자신의 명예를 위한 것이자 그를 지명한 권력자에게 봉사하는 자리로 이해될 때도 있다.
공직 후보자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질 때마다 등장하는 말이 있다. ‘국민 눈높이’가 그것이다. 이 말은 기묘하다. 인사청문회에서 흡사 모범 답안처럼 통용되기에, 우리는 자주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아 송구스럽다”라는 답변을 듣는다. 이런 ‘정직하지 않은 저자세’가 받아들여지면 후보자는 공직자가 된다. 다른 유형의 ‘국민 눈높이론’도 있다. 예컨대 후보자의 능력이나 전문성은 더없이 뛰어난데, 국민 눈높이가 너무 높아서 문제라는 것이다. 김승원 장관 후보에 대해 김민석 민주당 대표가 “볼수록 잘 된 인사”라고 옹호한 것이 대표적이다.
국민 눈높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도덕성 검토는 비공개로 하고 전문성과 능력에 대해서만 공개 청문회로 하자는 ‘제도 개혁론’도 돌아보게 된다. 은연중에 그런 주장은 능력이나 전문성이 도덕성과는 별개의 자질이라 전제한다. 능력과 전문성은 도덕성이나 인간적 좋음을 희생해야 얻어지는 자질인 걸까. 혹자는 ‘정치적인 좋음’과 ‘인간적인 좋음’은 일치할 수 있는가 하는 정치철학의 오랜 난제를 불러올지 모르겠다. 플라톤도 치자(治者)에게는 ‘고상한 거짓말’을 할 수 있게 했다거나, 마키아벨리는 아예 좋은 군주라면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수단을 과감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권고한 것을 인용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공직의 기준으로 능력이 탁월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게 아니냐고 반론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판단을 하는 이들은 이번 인사에서 잘못된 것은 국민 눈높이를 둘러싼 여론전에서 여당이 밀린 것일 뿐, 인사권자인 대통령은 잘못이 없다고 강변한다. 인사와 관련된 질문을 하는 것 자체를 불쾌하게 여긴다. “청와대는 인사권으로 말할 뿐”이고, 후보자가 사퇴했으면 그것으로 인사권은 종결된 것이니 관련된 질문에 청와대가 “대답해야 할 책임과 의무는 없(으며)”, 그 밖의 “다른 얘기는 청와대 입장에선 가십”일 뿐이라는 수석대변인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공직을 의무와 책임의 관점에서 논했던 키케로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봐야 할 것 같다. 키케로는 공직자 선발 과정을 가리켜 “해당 직에 합당한 도덕적 질문에 설명하는 일”로 이해했다. 그래야 시민은 미래의 공직자에게 위임한 권한이 올바르게 사용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청와대는 달리 생각한다. 적법하게 권한을 행사했을 뿐이니, 왜 지명했고 왜 낙마했는지는 묻지 말란다.
그렇다면 이번 공직 인사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나. 야권이 제기하고 언론이 퍼 나른 가십 때문에 국민 눈높이가 잘못 맞춰진 것이니 정치권과 후보자, 국민이 나눠서 감당하라는 것일까. 질문에 대한 청와대 대변인의 적대적 태도와 함께 “권한이 있는 곳에 설명의 책임이 있다”라는 공화주의의 원리는 부정된 느낌이다. 공화주의자의 관점에서 보면 설명의 책임을 지지 않는 권력자는 왕이다. 청와대도 너무 나갔다.
박상훈 정치학자·태재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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