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접은 ‘선생님 꿈’, 종이접기로 다시 펼친 90세 백혜영씨

노인의 날 앞두고 만난 90세 종이접기 선생님
22세 이화여대 입학했지만 등록금에 학업 중단
67세 복지관서 컴퓨터·합창·종이접기 시작
75세 시작한 어린이집 수업, 어느덧 16년째
매일 수업 준비… “건강하면 아이들 계속 볼 것”

백혜영씨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종이접기를 가르치는 모습. 부천시소사노인복지관 제공


“젊었을 땐 하고 싶은 걸 하나도 못 했어요. 지금이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니 그때 못 이룬 꿈을 이룬 것 같아요.”

노인의 날(10월 2일)을 앞둔 지난달 30일 경기 부천시에서 만난 백혜영(90)씨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종이접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75세에 시작한 일이 어느덧 16년째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 어린이집에 갔지만, 지금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 출근한다.

백씨는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를 꿈꿨다. 하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그 꿈을 일찍 접어야 했다. 22세에 이화여대 가정학과에 입학했지만, 등록금 문제로 1년 만에 학업을 중단했다. 24세에 결혼한 뒤에는 두 아들을 키우는 데 온 힘을 쏟았고, 이후에는 손주들까지 돌봤다. 하고 싶은 일은 늘 뒤로 밀렸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인 67세, 백씨는 부천시소사노인복지관에 다니며 컴퓨터와 종이접기 등을 배우기 시작했다. 합창도 하고 여러 수업을 들으며 뒤늦게 자신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종이 한 장으로 수십 가지 작품을 만들어내는 종이접기의 매력에 빠졌다. 주변 권유로 자격증까지 취득했고, 75세에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백혜영씨가 지난달 30일 경기 부천시소사노인복지관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유승혁 기자


90세가 된 지금도 수업 준비를 거르지 않는다. 수업 전날이면 직접 샘플을 접어보고, 아이들에게 어떤 순서로 설명할지 꼼꼼히 적어둔다. 종이접기는 순서가 조금만 달라져도 완성하기 어려워서다. 5~7세 아이들을 가르치는 만큼 나이에 따라 난이도도 달리 준비한다.

아이들이 처음부터 종이를 잘 접는 것은 아니다. 백씨는 “처음에는 종이를 구겨서 버리거나 입에 물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며 “그런 아이들에게 더 관심이 간다”고 했다. 5세 때는 세 번 접기도 어려워하던 아이들이 7세가 돼 작품을 완성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아이들은 백씨를 ‘종이접기 선생님’, ‘할머니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한 번은 아이들에게 맞춰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했다가 “아기 같다”는 말을 들은 뒤 한동안 ‘아기 할머니’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1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21.6%를 차지할 만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노년의 삶을 어떻게 채울지는 개인을 넘어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가 됐다.

백씨는 “75세에라도 일을 시작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건강 관리를 잘하면 노인들도 언제든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아이들을 계속 만나고 싶다”며 웃었다.
ⓒ 트윅, 무단 전채 및 재배포 금지
연예의 참견
여기 이슈
갓생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