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들고 할머니 영전에”…일본에서 애국가 부르겠다던 약속 지킨 허미미

박성국 기자
입력 2026 10 01 19:34
수정 2026 10 01 19:34
1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유도 여자 -57kg급 시상식.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허미미가 미소짓고 있다. 2026.10.1 나고야 연합뉴스
“이번 대회를 앞두고 금메달을 갖고 할머니 영전을 찾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를 지키게 돼 기쁩니다.”
한국 여자 유도의 간판 허미미(24·경북체육회)가 유도 종주국 일본에서 아시아 정상에 오른 직후 떠올린 사람은 5년 전 세상을 떠난 할머니였다. 어깨 부상 수술 이후 길고 힘든 재활에도 어금니를 꽉 깨물고 훈련에 매진했던 건 일본인 손녀 이케다 미미가 아닌 대한민국 유도 국가대표 허미미로 당당히 인사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허미미는 1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유도 여자 57㎏급 결승에서 아리운자야 테르비시(몽골)를 업어치기 유효승으로 꺾고 그토록 간절했던 종합국제대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실점 없이 4분의 시간을 버텨내고 우승이 확정되던 순간 허미미는 노란 매트 위에 뜨거운 눈물을 왈칵 쏟았다.
경기 직후 취재진을 만난 허미미는 “수술 후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서 걱정을 많이 했다”며 “어제는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친구들에게 연락해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물어볼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이어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뒤 많은 기대를 받았는데 이번 대회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래도 주변에서 ‘금메달이 아니어도 된다’라고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유도 여자 -57kg급 결승전. 한국 허미미가 몽골 아리운자야 테르비시를 상대하고 있다. 2026.10.1 나고야 연합뉴스
허미미는 파리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뒤 어깨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고 긴 재활을 거쳤다. 오랜 기간 실전 경기를 뛰지 못하면서 컨디션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고, 유도계에서는 예전의 기량을 되찾지 못했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기도 했다. 허미미는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허미미는 완벽한 부활을 알린 순간 할머니를 떠올렸다. 재일교포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두고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일본 여자 유도를 평정했지만 ‘한국 선수로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그는 “(할머니의) ‘그 말씀이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한국에 와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라면서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허미미는 독립운동가 허석 지사의 5대손으로 알려지면서 일본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 더 큰 관심이 쏠렸다. 애초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시상식에서 애국가를 따라 부르려고 외웠으나, 은메달에 그쳐 뜻을 이루지 못했다. 허미미는 “애국가 가사가 조금 어려워서 단어의 뜻 하나하나를 공부하면서 외웠는데, 지금은 잘 외우고 있어서 메달 세리머니 때 따라 부를 것”이라며 웃었다.
할머니를 위해 금메달을 따고, 일본에서 애국가를 부르겠다던 당찬 약속을 모두 지킨 그는 이제 아시아 매트를 넘어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바라본다.
“다음 스텝은 올림픽 금메달입니다. 일단 이번 대회 혼성단체전에서 2관왕에 도전하고 올림픽을 향해 열심히 훈련하겠습니다.”
허미미는 태극기가 수놓인 도복의 띠를 다시 조여 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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