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선택적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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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방의 오래된 책상 서랍을 모처럼 정리하다가 십수년 전에 쓰던 작은 수첩을 발견했다. 일정과 간단한 메모들을 넘겨보다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잠시 혼자 빙그레 웃기도 했다. 하지만 몇 장 못 넘어가서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쓰린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도 눈에 들어왔다. 기억세포에서는 희미해진 일들이 활자 기록을 통해 생생하게 재현되는 느낌이었다.

서울대가 얼마 전 ‘그랜드 퀘스트’라는 사업을 통해 지원하기로 한 6가지 연구과제 가운데 ‘인공지능(AI)은 인간처럼 망각할 수 있는가’라는 게 포함됐다고 한다. 과제 선정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AI가 인간처럼 스스로 맥락을 파악하고 무엇을 잊고 기억할지를 가려낼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인간에게 망각은 맥락에 따라 불필요한 데이터를 걸러내는 진화의 결과라고 한다. 실제로 사람은 과거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망각하거나,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왜곡되곤 한다. 서울대의 연구가 결실을 본다면 이런 현상에 대해서도 보다 과학적 설명이 가능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박성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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