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연기에 묻힌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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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학생 교육 환경 개선 외침에
정부는 소통보다 진압에 집중
정쟁·혐오에 본질은 뒷전으로
책임감 있는 태도로 응답해야

최근 프랑스 시위 현장에는 이런 문장이 적힌 팻말이 등장했다. “우리는 BAC(바칼로레아·고교 졸업 자격 시험)를 원할 뿐인데, 그들은 우리에게 BAC(범죄 단속 정예 경찰)를 보낸다.” 정상적인 환경에서 시험공부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외쳤더니, 거리 범죄를 강경 진압하는 경찰 부대의 최루탄과 물대포가 돌아왔다는 뜻이다. 이번 소요 사태의 비극적 단면을 집약하는 문장이다.

프랑스 전역을 달군 대규모 시위는 파리 남동부 외곽 크레테유의 생텍쥐페리 고등학교에서 시작됐다. 지난달 중순 교사들이 인력과 예산 부족을 호소하며 파업에 들어가자, 이에 공감한 학생들이 이후 학교를 봉쇄하고 교사 부족과 과밀 학급, 낡은 학교 시설, 과도한 수업 일정 등에 항의했다. 학생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며칠 만에 파리와 주요 도시의 학교로 들불처럼 번졌다.

현장에선 믿기 어려운 증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학생들은 화장실에 물이 나오지 않고, 교실에는 쥐와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며, 한여름엔 실내 온도가 최대 40도까지 치솟는다고 했다. 한 반에 30명이 넘는 학생이 빽빽이 앉아야 하고, 시험을 앞두고 몇 달씩 담당 교사 없이 보낸 경우도 있었다. 학생들의 요구는 거창하지 않았다. 막연한 투정이나 불만이 아니라 ‘배울 권리’를 지켜 달라는 최소한의 외침이었다.

학생들의 외침에 정부는 대화가 아닌 진압에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최루탄 등에 미성년자들이 중상을 입는 일이 속출했고 현장의 분노는 최고조에 달했다. 교육 시위는 치솟는 생활비에 항의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거대한 반정부 투쟁으로 번졌다. 정부의 강경 대응이 되레 시위 규모를 키우는 불쏘시개가 된 셈이다. 일부 지역에서 방화와 약탈이 벌어지자 정부는 치안과 질서 회복을 내세워 압박 수위를 높였다. ‘프랑스가 불탔다’는 자극적인 헤드라인 속에 교육을 바로잡아 달라던 학생들의 목소리는 연기 뒤에 묻혔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덮은 건 공권력만이 아니었다. 정치권은 수년 만의 최악의 소요 사태 앞에서도 ‘네 탓’ 공방에 몰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는 극좌 세력을 폭동의 배후로 지목하고 이들이 학생 시위를 부추긴다고 지적했고, 극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는 마크롱 정부가 배후설로 국민의 불만을 무마하려 한다고 맞받았다. 대선 주자인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의원은 근거도 없이 “통제받지 않은 이민의 대가”라며 책임을 돌리기 바빴다.

외국 지도자들까지 가세해 사태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며 사태의 본질을 흐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시위를 “통제 불능의 대규모 이민 문제”라고 단정 지었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프랑스가 극단주의 이슬람의 침략에 굴복했다”며 “유화책을 펴지 말고 극단주의자들과 싸우라”고 훈수를 뒀다. 정치가들의 셈법 속에서 ‘공교육 부실’이라는 문제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혐오와 선동의 소음만 남았다.

마크롱 대통령이 고등학생 대표들과 마주 앉은 것은 시위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나서였다. 엘리제궁에서 3시간가량 이어진 만남에서 그는 대학 입학 지원 플랫폼(파르쿠르쉬프) 개선 등 교육 개혁을 약속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구체적인 실행 조치가 나올 때까지 시위를 이어 가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국가는 우리의 미래에 관심이 없다’며 거리로 나선 학생들의 불신을 허물기에 3시간은 턱없이 짧았다.

물론 국가 채무가 불어나 긴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정부가 실현 불가능한 약속만 남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학생들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공약이 아니라, 자신들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응답하는 정부의 책임 있는 태도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이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해야 한다. ‘우리의 호소에 응답하고 함께 고민하는 국가가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불안한 미래에 현재를 잠식당한 학생들에게 가장 든든한 안전망이자 이 소요를 끝낼 수 있는 열쇠다.

조희선 국제부 기자(차장급)

조희선 국제부 기자(차장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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