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의 풀꽃 편지] 모든 명시에는 문제와 해답이 있다
입력 2026 10 29 21:36
수정 2026 10 30 01:59
“명시의 문장은 대화법… 그러기에
좋은 시를 읽으면 몽클했던
마음이 시원해지고, 치유와
위안과 축복이 함께 오는 것”
나는 50년 넘게 시를 써 온 사람이고 60년 넘게 시를 읽어 온 사람이다. 그동안 나는 좋은 시의 문장은 대화법으로 되어 있어서 묻는 말이 있고 대답하는 말이 있다고 말해 왔다. 그래야 리듬이 생기고 생기가 돌고 생명력 있는 문장이 되어 감동을 준다고 말해 왔다.그런데 얼마 전, 어떤 강연장에선가 나는 나도 모르게 “모든 명시의 문장에는 문제가 있고 해답이 있다”고 말해 버렸다. 앞에서 말한 ‘좋은 시의 문장은 대화법으로 되어 있어 묻는 말이 있고 대답하는 말이 있다’란 말을 발전시키고 변형시킨 말이다.
더 나아가 나는 그러기에 좋은 시를 읽으면 카타르시스가 되어 몽클했던 마음이 시원해지고 치유와 위안과 축복이 함께 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견 내가 한 말이긴 하지만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좋은 시의 문장에는 문제와 해답이 동시에 들어 있다? 그러면 한 번 그런 시의 문장을 찾아볼 일이다.
우선은 김소월 시인의 시 ‘진달래꽃’을 읽어 볼 일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시가 온통 문제와 해답으로 되어 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첫 연부터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고 또 확실한 해답을 보여 준다.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은 문제이고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는 해답인 것이다. 이 아름다운 시작품에 ‘역겨워’ 같은 강력한 갈등의 언어가 등장하는 것은 놀랍고도 신비한 일이다.
그다음 문장은 온통 떠나는 사람에 대한 서비스의 마음, 봉사와 희생의 마음으로 채워져 있다. 시를 읽으면서 내내 떠오르는 문장은 우리 민요 ‘아리랑’의 이 같은 문장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 이러한 평범한 원망과 아픔을 시인은 용서와 화해와 축복으로 화답했던 것이다.
그다음 정지용의 짧은 시 한 편 ‘호수’를 읽어 봐도 그렇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 이 작품 역시 문제와 해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얼굴 하나야’→문제.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해답.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문제. ‘눈 감을밖에.’→해답.
이러한 경우는 다른 시인들의 좋은 시에서도 마찬가지다. 박목월 시인의 ‘산이 날 에워싸고’는 온통 문제와 해답의 반복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본다.
‘산이 날 에워싸고’→문제. ‘씨나 뿌리고 살아라 한다’→해답.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해답. ‘어느 짧은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해답.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문제.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해답.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서도 그러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문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해답.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해답.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해답. ‘오늘 밤에도 별이’→문제. ‘바람에 스치운다’→해답.
이렇게 써 놓고 보면 실로 놀라운 일이다. 다른 시들은 어떨까?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라는 시.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이라는 시.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 작품 제목을 열거하려면 한도 끝도 없어 보인다.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문제.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해답.(조지훈 시인의 ‘낙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문제.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해답.(이형기 시인의 ‘낙화’)
나태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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