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압수수색으로 필수의료 붕괴 우려”…해외 선진국은 어떻게 대처하나?
이병문 기자
입력 2026 10 30 16:08
수정 2026 10 30 16:08
미국, 협조요청·소환장 활용…독일· 영국 관련자료 확보로 진료공백 최소화
일본은 2004~2006년 ‘오노병원 사건’으로 수사·압수수색 방식 완전히 바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기피 현상과 응급의료 인력난으로 가뜩이나 위기를 겪고 있는 필수의료 현장에 또 한 번의 거센 파장이 일고 있다. 환아 사망 사건 수사를 이유로 경찰이 진료 중이던 대학병원 소아응급센터를 압수수색하면서, 이에 반발한 의료진의 ‘사퇴 러시’ 우려가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30일 대한의사협회 대강당에서 열린 ‘소아응급실 압수수색 규탄 및 진료권 보호 촉구’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지숙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장은 “어제 병원장에게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지난 7월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에서 치료받던 영아가 숨지면서 시작됐다. 당시 청색증 증세 등으로 경기남부 지역의 대학병원 소아응급센터를 찾았던 영아가 치료를 받던 중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유족 측의 고소가 접수되자, 경기남부경찰청은 사건 경위를 규명하기 위해 9월 30일 해당 센터에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경찰은 사전 협의를 거쳐 필요한 범위에서 수사를 진행했다고 밝혔지만, 의료계는 진료가 이뤄지는 응급의료 현장에 수사 인력이 진입한 것은 다른 환자의 안전과 진료 연속성을 위협할 수 있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의료계는 이번 사건이 단지 한 병원의 수사 문제를 넘어 필수 응급의료 체계 전체를 흔드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한국과 같은 유사한 사안이 발생할 경우, 응급실 및 의료기관에 대한 수사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주요 선진국들은 대부분 병원 내 강제수사에 대해 매우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두고 있으며, ‘환자의 안전과 진료 연속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미국에서는 의료정보의 비밀과 환자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수사기관의 의료정보 접근에 법적 요건을 두고 있다. 수사기관은 사안에 따라 법원 명령이나 소환장, 압수수색 영장 등을 활용하며, 의료기관은 관련 법률과 절차에 따라 자료를 제공한다. 다만 압수수색의 방식과 진료 구역에 대한 접근 범위는 사건의 성격과 영장 내용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유럽 국가에서도 의료정보의 비밀 보호와 수사상 증거 확보 사이의 균형이 중요한 원칙으로 다뤄진다. 독일이나 영국 수사기관은 의료 행위의 특수성을 감안해 환자 치료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실물 증거를 즉시 압수하기보다는 관련 자료의 임의제출이나 디지털 사본 확보 방식을 우선 적용해 진료 공백을 최소화한다.
이웃 나라 일본 역시 과거 의료 현장에서 성급한 형사처벌과 공권력 투입이 ‘필수의료 붕괴’라는 뼈아픈 부작용을 낳았던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이를 계기로 무분별한 형사 수사 및 강제 압수수색을 자제하고, 의무기록 사후 조사와 재발 방지 중심의 행정·독립 조사 체계로 수사 기조와 법적 프레임을 완전히 개편했다.
일본의 필수의료 붕괴로 이어진 결정적 계기는 ‘오노병원 사건’(2004~2006)이었다. 2004년 12월 후쿠시마현립 오노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받던 산모가 태반 유착에 따른 과다출혈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은 사망 약 1년 2개월 뒤인 2006년 2월 수술을 담당했던 산부인과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진료 현장에서 전격 체포하고 병원 및 관련 의무기록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그러나 법원은 2008년 해당 의사에게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오노병원 사건은 일본 의료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의료사고로 환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담당 의사가 형사처벌 대상이 돼 체포되고 병원에 대한 강제수사가 이뤄지자, 의료계에서는 의료진의 위축과 필수의료 기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당시 일본에서 진행되던 산부인과 인력 부족과 지방 분만시설 감소 문제와 맞물리면서, 의료사고를 형사사건으로 다루는 방식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본격화됐다.
2015년 신설된 ‘의료사고조사제도(医療事故調査制度)’가 바로 이 같은 논쟁결과 만들어졌다. 환자가 예기치 않게 사망할 경우, 경찰이 먼저 개입하여 압수수색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의료기관이 원내 조사를 실시하고 제3자 독립기구(의료사고조사·지원센터)에 보고하도록 했다. 목적은 ‘개인 처벌’이 아닌 ‘의학적 원인 규명 및 재발 방지’에 있다. 전자의무기록은 작성·수정·조회 이력 등을 통해 기록의 변경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만큼, 일본 경찰은 응급실이나 수술실 등에 직접 진입하는 압수수색을 극도로 자제한다.
경찰 수사가 필요한 경우에도 병원 측의 자발적 자료 제출(임의제출) 및 서면 제출 요청을 우선 활용하며, 의료진 진료권과 다른 환자 치료권을 침해하지 않는 완충 절차를 둔다. 특히 산부인과의 경우 산과의료보상제도 등을 통해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분만 관련 뇌성마비 사례에 대해 의료진의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보상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의료사고에 대한 피해 구제와 분쟁 해결을 지원하는 장치다.
응급실 압수수색은 국가의 법 집행 권한 행사이기에 앞서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체계를 지키는 틀 안에서 다뤄져야 한다. 이제는 공권력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환자의 안전을 보장하면서도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성숙하고 합리적인 수사 관행의 정립이 시급하다.
이병문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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