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라 절대 안 걸려” 완벽한 범죄를 믿었던 두 살인마…15년 미제를 푼 ‘고속도로 통행권 1장’의 진실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정연호 기자
입력 2026 10 03 13:05
수정 2026 10 03 13:05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은 대한민국을 뒤흔든 주요 사건들을 통해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시리즈입니다. 과거의 기록을 되짚으며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고 정의와 안전의 가치를 깊이 있게 고찰하는 서울신문의 특화 기사입니다. 서울신문은 기사 내용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AI 음성을 이용해 기사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2002년 4월 18일 오전 7시경,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갱티고개 정상 부근에서 출근 전 아침 운동을 하던 인근 공무원이 산비탈 풀숲 나무 아래 유기되어 있던 40대 여성의 시신을 발견하며 끔찍한 참극이 세상에 알려졌다. 신원 확인 결과 피해자는 발견 장소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인 아산시 온천동 번화가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던 46세 여성 A씨로 밝혀졌다. A씨는 사건 전날 밤부터 범행 당일 새벽 2시 30분경까지 가게 영업을 마치고 퇴근하던 길에 잔혹하게 납치되어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현장 감식 결과 시신의 상태는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했다. 부검을 통해 밝혀진 사인은 경부 압박(목 졸림) 등이었으나, 시신에서 성폭행의 흔적은 관찰되지 않았다. 범인은 흉기를 사용해 피해자에게 치명상을 입혔으며, 안면부의 심한 멍과 늑골 골절, 간 파열 등 무자비한 폭행의 흔적도 함께 발견되었다. 피해자가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 상태였고 발바닥에 흙이나 상처가 전혀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갱티고개 현장은 범행 장소가 아닌 살해 후 유기된 장소로 추정되었다.
조수석 안전벨트의 혈흔, 그리고 미궁에 빠진 수사경찰은 피해자 A씨의 행적을 추적하여 노래방에서 약 300m 떨어진 평소 주차 장소에서 A씨의 승용차를 발견했다. 차량 내부를 정밀 감식한 결과 조수석 아래에서는 피해자의 신발이, 뒷좌석에서는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와 담뱃재가 발견되었다. 특히 조수석 안전벨트에서는 피해자의 것이 아닌 남성의 극소량 혈흔 한 방울이 포착되었다. 이 혈흔은 뒤에서 목이 졸리던 피해자 A씨가 마지막 순간 범인의 손가락을 강하게 물어뜯어 남긴 피였으며, 범인들이 수건 등으로 이를 닦아내는 과정에서 안전벨트에 소량 남아 있게 된 결정적 단서였다.
사건 당일 낮 12시 55분경부터 누군가가 피해자의 신용카드를 이용하여 충북 청원, 대전, 충남 무주 등 여덟 곳의 현금 인출기를 돌아다니며 총 195만 원을 인출한 사실도 확인되었다. 그러나 CCTV에 포착된 범인은 모자와 마스크, 후드로 얼굴 전체를 완벽히 가리고 있어 신원을 특정하기 어려웠다. 경찰은 현장에 남겨진 담배꽁초와 안전벨트 혈흔에서 추출한 남성의 DNA를 바탕으로 수많은 인물의 DNA를 대조했으나, 일치하는 대상자를 찾지 못한 채 초기 수사는 깊은 난항에 빠지게 된다.
3개월 뒤의 2차 사건1차 사건 수사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던 중, 불과 3개월 뒤인 2002년 7월 25일 갱티고개 일대에서 또 다른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새벽 출근길에 실종된 40대 여성 B씨로, 1차 사건 현장에서 불과 300m 떨어진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B씨의 사인 역시 경부 압박 질식사였으며, 시신 가슴 부위에는 차량 타이어 자국(윤적)과 늑골 골절 등 잔혹하게 훼손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두 번째 사건 역시 성폭행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동일한 유기 장소와 유사한 범행 수법으로 인해 경찰 내부에서는 연쇄살인 가능성이 강력히 제기되며 수사력이 분산되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두 사건 모두 1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범인을 잡지 못한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반전의 시작, ‘태완이법’과 프로파일링오랫동안 묻혀 있던 사건은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한 일명 ‘태완이법’이 시행되고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이 발족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2017년 1월, 5개 지방청 소속 8명의 프로파일러 합동 수사팀은 수사 기록 4,300여 쪽을 2박 3일간 정밀 재검토했다.
프로파일러 팀은 정밀 분석을 거쳐 세 가지 핵심 결론을 도출했다. 첫째, 피해자가 별다른 저항 없이 차에 승차한 점으로 보아 범인은 피해자와 얼굴을 아는 면식범이라는 것이다. 둘째, 흉기를 사전에 준비한 계획범죄라는 점이다. 셋째, 범인은 단독범이 아닌 2인 이상의 공범이라는 사실이다. 차량 내부에서 피해자의 혈흔이 발견되지 않은 점은 차량이 단순 납치 장소였음을 의미하며 한 명은 운전을 하고 다른 한 명은 피해자를 제압했을 것이라는 합리적 유추가 가능했다. 이 같은 공범 가능성 분석은 15년간 단독범 수사 구도에 갇혀 있던 경찰 수사의 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62장의 통행권과 ‘1분의 오차’를 쫓은 집념2002년 초기 수사 당시 경찰은 범인이 현금을 인출할 때 대전 톨게이트를 통과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해당 시간대 수거된 고속도로 통행권 62장에 대해 지문 감식을 실시했다. 당시 쪽지문이라 감식이 불가능했던 4장 중 1장에서, 2012년 감식 기술의 발전으로 이모 씨의 지문이 극적으로 검출되었다. 하지만 이 씨는 과거 피해자의 노래방에서 명함이 발견되어 참고인 조사를 받았음에도 자신의 DNA가 차량 내 혈흔 및 담배꽁초 DNA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용의선상에서 이미 배제된 바 있었다.
2017년 재수사에 착수한 김도형 경위는 청주 지역 지리에 밝았던 지식을 바탕으로 범인의 이동 동선을 치밀하게 재구성했다. 첫 현금 인출 장소인 청주 은행에서 30분 만에 고속도로 휴게소 ATM에 도착하려면 반드시 청주IC로 진입해야 한다는 가정을 세우고, 직접 차량을 운전하며 실전 테스트를 반복했다. 그 결과 수거된 62장의 통행권 중 청주IC 진입 시각이 정확히 일치하고 대전 톨게이트 진출 시각과 1분의 오차만 있는 통행권 1장을 특정해 냈으며, 이는 2012년 쪽지문이 검출된 이 씨의 통행권이었다. 이 씨의 DNA가 현장과 불일치했던 이유는 그가 진범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운전을 전담한 공범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완벽히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어긋난 동행의 전말, 그리고 15년 만의 검거수사팀은 이 씨가 미성년자 시절 공범들과 택시 강도를 벌인 전과가 있으며, 사건 당시 갱티고개 인근 마을에 거주해 지형에 매우 밝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산에서 성인오락실을 개업해 평범하게 생활하던 이 씨는 체포된 후 형사들의 7시간에 걸친 집중 추궁 끝에 마침내 공범의 존재를 자백했다. 이 씨가 지목한 공범은 회사 후배이자 중국 조선족 국적의 불법체류자였던 최 모 씨였다.
공범 최 씨는 2006년 자진신고 제도를 통해 출국했다가 2014년 정식 비자를 발급받아 재입국한 뒤 경기도의 한 회사에서 버젓이 근무하고 있었다. 출근길에 체포된 최 씨의 DNA를 대조한 결과, 2002년 피해자 차량 조수석 안전벨트에 남겨졌던 남성의 혈흔 및 담배꽁초 DNA와 완벽히 일치했다.
조사를 통해 밝혀진 전말은 충격적이었다. 아산의 폐기물 업체에서 만나 적은 봉급에 불만을 품고 퇴사한 이들은 유흥비가 떨어지자 강도를 모의했다. 단골 노래방 사장 A씨를 범행 대상으로 정한 이들은 영업을 마치고 나온 A씨에게 집에 태워다 주겠다며 차량에 탑승한 뒤 강도로 돌변하여 현금 30만 원과 체크카드 비밀번호를 강탈했다.
면식범인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 날 것을 우려한 이들은 뒷좌석에 있던 최 씨가 안전벨트로 A씨의 목을 조르며 끔찍한 범행을 이어갔다. A씨가 최 씨의 손가락을 깨물며 거세게 반항하자, 이 씨는 범행 발각을 피하고자 최 씨에게 흉기를 건네어 피해자의 숨통을 완전히 끊는 잔혹한 범행을 저지르도록 유도했다. 이후 이들은 시신을 갱티고개 비탈길에 굴려 유기하고 도주했던 것이다.
2017년 11월 22일,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재판부는 강도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기소된 이 씨와 최 씨에게 각각 무기징역을 선고했으며, 2018년 항소심과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며 무기징역이 최종 확정되었다.
15년 동안 냉대 속에 묻혀 있던 1차 사건의 진실은 피해자가 마지막 순간 범인에게 남긴 피의 메시지와 수사관들의 집요한 집념, 프로파일링 과학수사가 결합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그러나 3개월 뒤 동일한 장소에서 발생한 2차 갱티고개 살인 사건은 현재까지도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어 여전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정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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